국세청이 ‘못 걷고 있는 세금이 100조원이 넘는다’는 외부 지적을 피하려고, 고액 체납자들의 세금을 불법 탕감해 준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이 12일 공개한 ‘국세 체납 징수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체납자 20만9149명이 세금 16조5499억원을 탕감 받았다. 감사원은 그중 최소 1조4268억원이 불법적으로 탕감된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에는 고액 체납자 1066명이 내지 않은 세금 7222억원도 포함됐다. 1038억원을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625억원을 체납한 정보근 전 한보철강공업 대표, 423억원을 체납한 이동보 전 코오롱고속관광 대표, 227억원을 체납한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도 체납 세금의 일부를 탕감받았다. 2조원대 다단계 사기 혐의 등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주수도 전 JU그룹 회장도 532억 체납 세금이 탕감 대상이 됐다.
이런 일은 국세청이 누적 체납액 축소에만 집중하면서 벌어졌다. 국세청은 2020년 10월 내부적으로 집계한 누적 체납액이 12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이를 이듬해 6월까지 100조원 밑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각 지방국세청에 일률적으로 ‘체납액을 20% 줄이라’는 목표치를 내려보내고, 실적 부진 관서를 공개하는 등 줄 세우기를 했다.
세금에는 5년 또는 10년의 ‘소멸 시효’가 있지만, 국세청이 세금 징수를 위해 체납자 재산을 압류하는 동안은 시효가 중단된다. 단, 체납자 재산이 강제 징수에 드는 비용보다 적으면 예외적으로 압류를 해제한다. 그래서 시효가 완성되면 납세 의무는 사라진다.
국세청의 실적 압박을 받은 세무서들은 체납자들의 재산에 대한 압류를 해제하고 전산 시스템을 조작해 마치 처음부터 압류가 되지 않아 세금 소멸 시효도 중단되지 않았던 것처럼 처리했다. 그 결과 시효가 성립된 세금들은 자동 탕감됐다. 국세청도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038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고액 체납자 2만7915명의 명단을 각 지방국세청에 내려보내 이들에 대한 압류 해제를 유도하며 불법 탕감을 조장했다.
관련자 대다수가 퇴직하거나 국가공무원법상 징계 시효 3년을 넘겨, 이 일로 징계를 받는 국세청 공무원은 1명뿐이다. 감사원은 국세청에 누적 체납액 축소 계획을 세운 당시 징세과장에게 주의를 주고, 이를 결재한 김대지 전 국세청장의 비위 행위를 기록으로 남겨두라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