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의 전경. /장경식 기자

국세청이 세금 체납자들이 내지 않고 버티던 세금 1조4268억원 이상을 그냥 탕감해 준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불법적인 탕감이었다. 걷지 못하고 있는 세금이 122조원에 달하자, 이를 ‘두 자릿수’(99조원대 이하)로 맞추겠다며 벌인 일이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고액 세금을 탕감할수록 못 걷은 세금 총액을 줄이는 효과가 크다며, 고액 체납자가 안 낸 세금을 집중적으로 없애주기까지 했다.

감사원이 12일 공개한 ‘국세 체납 징수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에는 시효가 있다. 통상적으로는 5년, 5억원 이상의 세금은 10년이다. 국가가 이 기간 내에 납세의무자에게서 세금을 받아내지 못하면 해당 세금은 사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 국세청은 세금 체납자의 재산을 파악해 압류한다. 그동안에는 세금 소멸 시효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체납자들의 납세 의무가 사실상 무기한 계속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체납자의 재산이 강제 징수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적어서 강제 징수를 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산 압류를 해제한다. 그러면 중단됐던 시효가 재개된다. 그 뒤에도 체납자의 재산이 추가로 파악되면 국세청이 이를 다시 압류하지만, 그러지 않은 채로 5년 또는 10년인 시효가 완성되면 해당 세금이 사라진다. 국세청은 못 받은 세금을 결손 처리한다. 이는 결국 체납자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이므로, 그 절차와 요건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다.

국세청은 2020년 10월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누계 체납액, 즉 국세청이 걷지 못하고 있는 세금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국세청은 전산 시스템에서 금액이 집계되지 않는다며 당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내부적으로 누계 체납액을 집계해 보니, 12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국세청은 ‘이 금액을 이대로 공개하면, 그동안 국세청이 체납 세금을 제대로 걷지 않아 왔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누적 체납액을 이듬해 6월 공개하고, 그때까지 액수를 100조원 미만으로 줄여 놓기로 했다.

100조원 미만이 목표액이 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당시 국세청 담당자는 감사원 조사에서 “청장(김대지 당시 국세청장) 보고 과정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120조원, 110조원, 100조원, 90조원 중 100조원(미만)을 (목표치로) 고른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담당자는 “징세과장이 청장 보고를 다녀온 이후 누계 체납액을 100조원 미만 ‘두 자릿수’(00조원)로 축소하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진술했다.

이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8개월 안에 누계 체납액을 22조원 넘게 줄여야 했는데, 그동안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체납자들이 갑자기 그만큼의 세금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국세청은 체납자들이 내지 않은 세금을 소멸 시효를 완성시켜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누적 체납액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세청은 ‘누계 체납액 축소 로드맵에 따른 소멸 시효 정비 계획’을 세우고, 각 지방국세청에 일률적으로 ‘누계 체납액을 20% 줄이라’는 목표치를 내려보냈다. 또 누계 체납액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지방국세청별, 세무서별, 부서별, 개인별 성과 지표에 넣어 ‘줄 세우기’를 시작했다. 2021년 초부터는 다달이 ‘체납 정리 상황 점검 회의’를 열어 세무서별 누계 체납액 축소 실적을 공개하고, ‘실적 부진’ 관서를 특정해 공개했다.

실적 압박을 받은 일선 세무서들은 체납자들의 재산에 대한 압류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는 압류를 해제하더라도 세금 소멸 시효가 재개될 뿐 당장 체납 세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선 세무서들은 전산에서 압류 해제 다음 날로 자동 입력되는 소멸 시효 재개일을 수동으로 조작해, 마치 압류가 처음부터 없었고, 세금 소멸 시효도 중단되지 않았던 것처럼 처리했다. 가령 세금이 부과된 지 2년 뒤부터 10년간 압류돼 있었던 체납자 재산 압류를 풀면서 이를 없었던 것으로 처리해, 세금 부과 이후 12년 동안 국가가 세금을 거두려 하지 않은 것처럼 만든 것이다. 세무서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이런 식으로 체납자들이 내야 할 세금을 없애줬다.

국세청은 이런 불법 행위를 오히려 조장했다. 국세청은 누계 체납액을 줄이는 데에는 고액·상습 체납자의 체납액을 축소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체납액이 적게는 16억4000만원에서 많게는 1038억원에 달하는 고액 체납자 282명을 선정해 2020년 11월 그 명단을 각 지방국세청에 내려보내면서 ‘압류 해제를 검토해 소멸 시효를 정비하라’고 했다. 그 결과, 고의적·지능적인 재산 은닉 혐의로 추적 조사 대상자로 선정된 25명을 비롯해 고액·상습 체납으로 실명까지 공개됐던 183명의 체납 세금 일부가 사라졌다. 이듬해 3월에는 5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2만7633명을 추가로 선정해 그 명단을 내려보냈다.

이런 식으로 국세청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체납자 20만9149명이 내지 않은 세금 16조5499억원을 없애줬다. 이 가운데에는 국세청이 압류를 잘못하거나 압류 해제를 해야 할 상황이 됐는데도 해제하지 않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감사원은 최소 1조4268억원은 국세청이 계속 받아내고자 노력했어야 하는 세금인데도 불법적으로 없애준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에는 5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 1066명이 내지 않은 세금 7222억원도 있었다. 감사원은 “고의적·악의적 고액·상습 체납자에게 부당한 혜택이 제공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심지어 1066명의 고액 체납자 중에는 명단 공개자 208명, 출국 금지 중인 자 90명, 추적 조사 대상자 15명 등 강제 징수 회피 우려 및 재산 은닉 혐의 등으로 국세청에서 관리 중인 체납자들이 포함돼 있었고, 이들의 체납액 2685억원이 위법·부당하게 소멸돼 이 중 일부는 규제에서 벗어나자 은닉 재산으로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 일상적인 경제 활동을 재개하기도 했다”고 국세청을 비판했다.

국세청은 소액 체납자의 세금을 없애주는 것은 실적 달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특별히 독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상대적으로 소액 체납자는 소멸 시효 정비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여전히 재산 압류 상태가 지속돼, 경제적으로 재기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2021년 6월 말 기준으로 누계 체납액이 98조7000억원이라고 2021년 9월 발표했다. 전년도에 임시로 집계한 122조원에서 23조3000억원 줄어든 금액이었다. 이후에도 국세청의 불법적인 체납자 세금 없애기가 계속됐다. 감사원은 “2020년 12월부터 2023년까지 전국 7개 지방국세청, 132개 세무서에 소속된 체납 담당자 1494명이 2만1285건 이상의 압류 재산 해제 업무를 위법·부당하게 처리해, 정당한 국세 채권 1조4268억원이 소멸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국세청 공무원 가운데 이 일로 징계를 받게 되는 사람은 1명뿐이다. 사태를 주도한 관련자 대다수가 퇴직했거나, 대부분의 일이 국가공무원법상 징계할 수 있는 시효인 3년을 넘겼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국세청에 ‘소멸 시효 정비 계획’을 세웠던 당시 징세과장에 대해 주의를 주고, 김대지 전 국세청장에 대해서는 비위 행위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라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