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회 전 감사원장 권한대행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운영 쇄신 TF’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감사했다가 감사원 ‘운영 쇄신 TF(태스크포스)’에 의해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고발된 감사원 간부가 TF 활동으로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2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앞서 지난 9월 감사원 사무처는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정상우 사무총장이 취임한 직후 TF를 구성해 서해 사건,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비위 관련 감사 등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했던 감사 7건이 ‘정치 감사’였다며 이에 대한 ‘진상 규명’ 작업을 진행했다. TF는 지난달 서해 감사 중간 결과 발표와 최종 결과 발표는 군사기밀 누설이었다는 결론을 냈고, 감사원 명의로 유병호 당시 사무총장(현 감사원 감사위원) 등 7명을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된 7명 가운데 김숙동 심사관리관(전 특별조사국장)은 29일 인권위에 낸 진정서에서 “TF의 조사 결과와 TF가 생산한 모든 문서, 이와 관련된 모든 증거 서류는 불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으로 증거 능력이 없어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김 관리관은 먼저 TF의 구성이 불법적이었다고 했다. 공공감사법에 따라 내부 감찰을 하려면 TF에 감사원 감찰담당관과 감찰담당관실 직원들이 포함됐어야 하는데, 이들을 배제한 채 TF가 구성됐다는 것이다.

김 관리관은 또 “TF는 특정 정치 세력의 외부 목소리에 근거해, 전 정부의 주요 감사를 ‘정치 표적 감사’ ‘하명 감사’로 규정한 후, 이를 해소한다며 서해 감사 등 7개 감사를 점검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지적했다.

김 관리관은 “TF가 다수의 직원을 조사하면서 피조사자가 요구한 자료를 열람시켜 주지 않거나 피조사자의 주장을 반영해 주지 않았고, 조사 내용을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등으로 적법 절차를 위반했다”고도 주장했다. 또 “TF가 피조사자의 방어권을 침해하고 증거를 왜곡한 허위 사실을 결과 보고서에 적시했다”며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가 농후하다”고 했다.

김 관리관은 특히 정 총장이 ‘TF 조사에 협조하라’고 명령했고, TF는 이를 거부할 시 징계나 과태료 부과 처분을 하겠다고 압박했다며, 정 총장과 TF가 자신의 방어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적법 절차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김 관리관은 정 총장이 과장급 이상이 참석하는 간부회의에서 2차례에 걸쳐 ‘직무명령이니 조사에 협조하라’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등의 말을 하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고도 주장했다.

김 관리관은 TF 조사 결과를 확정하고 감사원의 ‘정치 감사’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김인회 전 감사원장 권한대행도 비판했다. 그는 “김 전 대행은 TF 조사 결과가 감사위원회의에서 확정한 증거나 내용에 반할 뿐 아니라 ‘정치 감사’ ‘표적 감사’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는 등 사실과 다른데도, 감사위원회의를 거치지 않은 채로 본인이 특별조사국 직원들과 함께 전 정부 3년 동안 정치·표적 감사에 동원됐다는 등의 내용을 그대로 승인하고는, 본인을 포함한 7명을 군사기밀 유출, 공무상 비밀 누설,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수사 기관에 고발했다”고 했다. 이어 “김 전 대행은 정 총장 등과 함께 TF 결과를 세 차례에 걸쳐 언론에 공표했고, 기존 감사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인 양 국민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다”고도 했다.

김 관리관은 그러면서 “김 전 대행과 정 총장 등의 이러한 행위는 감사위원회의 권한 침해, 본인 등의 명예 훼손, 무고,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 남용과 정치적 중립 위반 등에 해당할 개연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전 대행과 정 총장 등은 TF의 구성과 활동, 결과 발표 등 그 전반에 걸친 불법행위를 방조, 남용, 공모하는 등으로 다수 피조사자의 방어권, 자유권, 명예 등 인권을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기 바란다”고 했다.

김 관리관은 또 “지금 감사원에서는 TF의 불법적인 조사 결과를 향후 인사에 반영하는 등 다수 관련자에 대해 인사 조치를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특히 정당한 방어권 행사를 조사 거부로 간주해 본인 등에 대해 징계 등의 인사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정 총장 등의 행위와 TF의 조사 결과는 불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으로, 이를 근거로 하는 조치는 모두 무효”라며 “인권위법 48조 1항 및 55조 등에 따라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도록 선행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권위법에 따르면, 인권 침해나 차별 행위를 당한 사람은 인권위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다. 인권위는 접수한 진정을 조사해 실제로 인권 침해나 차별 행위가 일어났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피진정인에게 구제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인권 침해나 차별 행위의 중지, 원상 회복, 손해배상, 재발 방지 조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