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AI 디지털 교과서 발행사와 개발사 임직원 2000여명이 AI 교과서 폐지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감사원이 윤석열 정부가 충분한 준비 없이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해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비판하는 감사 보고서를 내놨다.

AI 교과서 도입은 윤석열 정부가 2022년 7월 공개한 120대 국정 과제와 연관돼 추진된 사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AI 등 신기술을 활용한 교육 혁신으로 미래 핵심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AI 기반 학력 진단 시스템으로 맞춤형 진단·학습을 지원하고, 학생의 특성에 맞게 기초 학력을 밀착 지원하겠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학생들이 디지털 교과서로 학습을 하면 개인별 학습 이력 데이터가 축적되고, 이를 AI가 분석해 학생들에게 다시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습 자료가 제공되는 체계를 구상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17일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서 AI 교과서가 윤 정부 국정 과제의 일환으로 추진됐다는 언급 없이 “교육부는 이주호 장관이 2022년 11월 7일 취임하면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지시해 2023년 1월 5일 2025년부터 (AI 교과서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부가 외부 의견 수렴 없이 7차례 내부 회의만 거쳐 2025년 AI 교과서 도입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AI 교과서를 사용할 학생, 학부모, 교사 등 당사자로부터 AI 교과서 도입 여부, 도입 시기, 의무 도입 여부 등에 대한 의견 수렴은 전무했다”고 했다.

AI 교과서 제작에 뛰어든 기업들에게는 AI 교과서가 모든 학교가 반드시 교과서로 채택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하는 학교만 교과서로 채택하는 것인지가 중요했다. 이에 따라 AI 교과서 시장 규모가 크게 달라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기업들은 교육부에 AI 교과서를 모든 학교에 의무적으로 도입시킬 것인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문의했으나, 교육부는 2023년 9월까지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교육부 실무자들은 AI 교과서 도입 여부를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하고 AI 교과서 도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이주호 당시 교육부 장관은 ‘기업들의 의문을 명확히 정리하라’고 지시했고, 지시를 받은 교육부 관계자가 2023년 10월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AI 교과서는 모든 학교가 의무 선정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AI 교과서는 모든 학교가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2023년에 AI 교과서를 2025년부터 전면 도입하려고 보니, AI 교과서 개발을 마치고 시범 운영을 해볼 시간이 없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AI 교과서가 개발돼 검정을 통과하는 대로 이를 실제 수업에 곧바로 사용하고, 그 결과에 따라 AI 교과서를 수정·보완하는 ‘현장 적합성 검토’를 도입 후 6개월간 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그러나 AI 교과서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개발 기간이 촉박하다는 의견을 내 개발 기간이 3개월 연장됐고, AI 교과서 개발과 검정(檢定)은 지난해 11월에야 끝났다. 그러다 보니 현장 적합성 검토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를 개발하는 기업들에 AI 교과서가 갖춰야 하는 기술적인 요건도 제때 제시하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비판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교육부는 AI 교과서 ‘기술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들이 AI 교과서 제작에 일단 뛰어들게 했고, 2023년 12월에야 기술 기준을 내놨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제작하던 AI 교과서를 뒤늦게 나온 기술 기준에 따라 재설계해야 했고, 개발 일정에 차질을 빚거나 품질 저하를 호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AI 교과서는 각 학교가 과목별로 특정 교과서를 구독하고 이에 대한 구독료를 AI 교과서 제작 기업에 정기적으로 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AI 교과서 도입을 결정했으면서도 여기에 필요한 구독료 예산은 추계조차 하지 않았고, 시·도교육청에 구독료를 부담시키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각 시·도교육청이 협의를 요청했으나 교육부는 요청을 묵살했다.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교육부에 AI 교과서가 올해부터 모든 학교에 의무적으로 도입됐을 경우 시·도교육청이 매년 부담해야 하는 구독료를 추계하도록 했다. 그 결과 구독료는 올해 3361억원에서 내년 5421억원, 2027년에는 8634억원, 2028년에는 1조732억원으로 불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교육부에 “앞으로 AI 교과서 같은 새로운 형태의 교과서를 도입할 때에는 우선 시범 운영을 실시해 효과성을 검증하고 문제점을 미리 점검하도록 하며, 시범 운영 대신 현장 적합성 검토를 하기로 했다면 교사들이 학교 수업 현장에서 충분히 적용·검토해 문제점을 점검하고 반영한 후 도입하도록 하라”며 주의를 줬다. “AI 교과서 사업 등 지방 교육 재정에 부담을 주는 사업을 추진할 때는 필요 재원을 검토하고 (재원 조달 방안을) 시·도교육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정하라”고도 했다.

AI 교과서 도입은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AI 교과서 의무 도입을 추진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AI 교과서를 ‘교육 자료’로 격하시키고 정식 교과서가 되는 것을 금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교육부는 일단 올해에는 AI 교과서 도입 여부를 각 학교가 선택하도록 했다. AI 교과서 금지 법안은 지난 1월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으나,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8월 새 법안이 의결됐고 이 대통령이 이를 법률로 공포했다. 이에 따라 AI 교과서는 교과서 지위를 잃었다. 이때까지 AI 교과서 도입 사업에는 총 1조4093억원이 투입됐다.

AI 교과서 도입에 대한 감사는 지난 2월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감사 요구안이 가결되면서 이뤄진 것이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가 감사 요구를 의결하면 감사원은 해당 사안을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