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식 기자

감사원이 이재명 정부의 ‘정책 감사 폐지’ 기조에 맞춰 감사원 규칙을 고쳤다. 정부의 정책 결정과 관련해서는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없는 한 감사를 아예 하지 않는 방향이다.

감사원은 지난 3일 김인회 당시 감사원장 권한대행 주재 감사위원회의에서 ‘감사원 감사사무 처리규칙’을 개정해 시행했다고 17일 밝혔다.

감사원은 2022년 감사사무 처리규칙을 만들면서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當否·옳고 그름)”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못박았다. 정부의 정책 결정 자체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때부터 이미 감사원의 원칙이었다.

그러면서도 감사원은 “다만, 정책 결정의 기초가 된 사실 판단, 자료·정보 등의 오류,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적정 여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적법성, 절차 준수 여부 등은 감찰 대상으로 한다”는 단서 조항을 뒀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번 규칙 개정을 통해 이 단서 조항의 내용을 모두 없애고, 이를 “다만, 정책 결정과 관련된 불법·부패 행위에 대한 직무감찰은 할 수 있다”로 바꿨다. 그러면서 “단서 조항을 과감히 축소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앞으로 정부 정책 결정의 바탕이 된 자료에 오류가 있었는지, 정책 수단이 적정한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절차가 지켜졌는지에 대한 감사도 하지 않게 된다. 감사원은 “정책 결정 사안은, 사회 현안으로 부각돼 불법·부패 행위까지 의심되는 정황이 있는 등 (범죄) 혐의가 상당한 경우에 한해 신중하게 감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감사원은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른 본연의 회계검사 및 직무감찰 임무에 충실하면서 정책의 성과·효율성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회의 감사 요구 등) 외부 요청으로 정책 결정 사안에 관한 감사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객관적인 경위·사실관계의 확인 등 정보 제공에 중점을 둠으로써, 공직사회를 경직시키는 과도한 정책 감사 논란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5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감사원의 이번 조치는 이 대통령의 ‘정책 감사 폐지’ 주문에 부응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24일 대통령실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책 감사·수사 이런 명목으로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들을 괴롭혀서 의욕을 꺾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해주시길 바란다”고 지시했고, 그로부터 13일 만인 지난 8월 6일 감사원은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달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직 활력 제고 추진 성과 및 공직 역량 강화 향후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2일에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공직 활력 제고 추진 성과 및 공직 역량 강화 향후 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 감사사무 처리규칙을 개정하고, 내년 상반기에 감사원법을 개정해 정책 감사 폐지를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감사원이 강 비서실장이 내놓은 일정표대로 움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