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 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의 지원 대상을 9월부터 확대한 가운데, 새출발기금을 실제 운영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무 상환 능력이 충분한 사람에게까지 채무 840억원을 감면해 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나타났다.
감사원이 15일 공개한 캠코 정기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캠코는 2022년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3조9038억원을 들여 금융권에서 부실 채권을 매입한 뒤, 이 채무를 부담해야 하는 사람 3만2703명의 채무 원금을 90%까지 탕감해 줬다.
그런데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이 가운데 1944명(5.94%)은 매달 빚을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실제로 갚아야 하는 금액보다 커서, ‘변제 가능률’이 100%를 웃돌았다. 채무를 감면해 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캠코는 이들에게 원금의 60%가량을 감면해 줬는데, 이는 캠코가 새출발기금을 일단 채무 조정 대상자가 되기만 하면 원금에서 적어도 60%는 감면받을 수 있도록 설계해 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씨는 월평균 소득이 8084만원에 달한 반면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641만원에 불과했는데도 새출발기금으로 채무 원금 3억3329만원 가운데 2억602만원(61.8%)을 감면받았다.
또 새출발기금으로 채무 원금을 3000만원 넘게 감면받은 1만7533명 가운데 269명은 가상 자산을 1000만원어치 넘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람들이 감면받은 채무 원금은 225억원에 달했다. 일례로, B씨는 지난해 7월 새출발기금을 신청해 같은 해 11월 채무 원금의 77%인 9190만원을 감면받았다. 그런데 B씨는 한 달 뒤인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가상 자산 거래소 계좌에만 4억5229만원을 갖고 있었다.
새출발기금으로 채무를 감면받기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를 해준 사람도 있었다. 채무 원금을 3000만원 넘게 감면받은 1만7533명 가운데 77명은 새출발기금 신청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를 해놓고 새출발기금으로 원금 66억원을 감면받았다. 예를 들어, C씨는 2022년 말 자녀에게 토지와 오피스텔 6억원어치를 증여했는데 이듬해 6월 새출발기금을 신청해 채무 원금 6466만원을 탕감받았다.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1만7533명 가운데 39명은 비상장 주식을 1000만원 이상 갖고 있었는데도 채무 34억원을 감면받았다.
감사원은 캠코에 “새출발기금 부실 차주 채무 조정 시 소득 등 상환 능력을 고려해 감면 대상 여부를 결정하고, 감면율에도 상환 능력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감면율 산정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또 “재산 조사 시 가상 자산, 증여 및 비상장 주식 보유 현황을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사해 행위 의심자들에 대해 추가 조사해 적정한 조치를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