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국가공무원법 제57조의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표현을 삭제하기로 했다.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된 1949년부터 76년간 유지된 ‘복종의 의무’ 조항을 폐지하고 이를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도 신설된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달 말쯤 정부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그로부터 약 6개월 후 시행될 예정이다.
국방부도 이날 ‘군인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 개정에 찬성한다는 의견서를 국회 국방위 법안소위에 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군인이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은 이런 개정안들을 검토한 뒤 ‘명령 복종의 의무’ 조항에 ‘정당한 명령’이란 점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단,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는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을 신설하자고도 했다.
이에 대해 공직 사회와 군에서는 “수직적 위계질서 탓에 위법한 지시를 따르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란 평가와 “위법한 지시가 무엇인지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공직자에 ‘명령 거부권’… 합법적 지시도 자의적 판단으로 불복 우려
인사혁신처는 76년간 유지된 공무원의 ‘복종의 의무’를 폐지하는 데 대해 “공무원으로 하여금 명령과 복종의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의사를 결정해 나가도록 하는 한편, 상관의 위법한 지휘·감독에 대해서는 이행을 거부하고 법령에 따라 소신껏 직무를 수행해야 함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국가공무원법과 군인복무기본법 개정 방향이 이미 지난 수십 년간 확립된 대법원 판례를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대법원은 그간 공무원은 물론 군인도 명백히 위법한 명령·지시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일관되게 판결해 왔다. 오히려 위법한 명령·지시를 이행하는 것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위법’ 여부 자의적 판단 우려
인사혁신처가 25일 공개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은 이런 판례의 취지를 반영해 ‘복종의 의무’만 규정했던 제57조를 ①~⑤항으로 나눴다. ‘공무원은 소속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그 직무 수행에 관하여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①항이다.
인사처는 ②항에 ‘공무원은 구체적인 직무 수행과 관련된 지휘·감독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③항에 ‘소속 상관의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큼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④항에는 누구든지 이런 의견 제시나 지휘·감독 불이행을 이유로 ‘공무원에게 불이익 처분이나 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포함된다. 이런 의견 제시 등을 위해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것이 ⑤항이다.
문제는 실제 업무 중 공무원 개개인이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 짓기 모호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인사처는 당장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법 시행이 확정된 후 시행까지 6개월 동안 여러 의견을 수렴해 (기준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윤상화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신속한 공무 집행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공무원 개인이 지시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 절차가 늘어질 수 있으므로,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인 기준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이 상관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업무 지시 이행을 제대로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경찰 한 고위 관계자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에서 소신을 지킨다며 지시에 불복하는 경우가 생길까 우려된다”고 했다.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에 반발했던 검사들을 징계하려 했던 여권이 ‘복종의 의무’ 폐지를 추진하는 것이 이율배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상관의 지휘·감독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면서 항소 포기 사태에 의견을 낸 검사장들을 공격하는 자가당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고 했다.
◇軍 실전 대응력 약화 막아야
국방부도 군인의 ‘명령 복종의 의무’를 규정한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를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국방부는 ‘명령 발령자의 의무’를 규정한 24조에도 ‘군인은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여 명령을 발령해야 한다’는 문장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냈다. 군에서는 ‘정당한 명령’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의 법령 및 제도를 검토한 결과 상관의 ‘명백히’ 위법한 명령을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했다. 실제 미국은 군인들이 ‘적법한 지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 법을 어떻게 개정할지에 대해 국방부는 ‘적법한 명령’이 아닌 ‘정당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고치자는 의견을 냈다. ‘적법성’의 판단도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에 맡겨야 할 만큼 복잡한 상황이 있는데, ‘정당성’은 그보다 더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 때문에 군의 실전 대응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현역 장성은 “부하들이 명령에 따르기 전에 인공지능 검색 엔진에 지휘관 지시가 정당한지부터 물어보게 될 판”이라고 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의원은 “전장에서 명령을 받은 부하가 ‘이것이 정당한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순간, 지휘는 단절되고 작전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준장)도 “군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의 존립을 보호하는 최후의 기관인데, 명령에 ‘조건부 복종’을 하게 되면 그 대가는 국민이 치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