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감사했던 감사관들을 조사해 온 감사원 ‘운영 쇄신 TF(태스크포스)’가 20일 “유병호 전 사무총장(현 감사원 감사위원) 시절 실시된 국민권익위원회 감사는 감사 착수부터 처리, 시행 과정 전반에 걸쳐 위법·부당 행위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감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감사원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유병호 감사위원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의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은폐·왜곡 의혹,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 감시초소(GP) 철수 부실 검증 의혹,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정식 배치 고의 지연 의혹 등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감사를 주도했던 인사로,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표적 감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됐고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앞서 2022년 7월 감사원은 전현희 당시 국민권익위원장(현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해 ‘심각한 비리 제보’가 접수됐다며 권익위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이듬해 6월 감사원은 전 전 위원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유리하게 이해충돌방지법을 유권해석하는 과정에 관여했고, 그러면서도 권익위가 자신의 개입을 숨기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게 했다는 내용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 전 위원장이 서울과 세종에 있는 권익위 청사로 출근해야 하는 날의 대부분을 지각했고, 그런데도 이에 대한 감사원 조사에 소명하지 않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감사 보고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주심(主審)이었던 조은석 당시 감사위원(현 내란 특별검사)의 열람 확인을 거치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감사원은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정상우 사무총장 취임 직후 운영 쇄신 TF를 구성해, 전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를 비롯해 민주당이 문제 삼은 감사 7건과 관련해 당시 감사관들을 상대로 ‘진상규명’ 작업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 첫 번째로 내놓은 조사 결과다. 원전 경제성 조작,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통계 조작, 북한 GP 철수 부실 검증, 사드 고의 지연 의혹과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관저 용산 이전 등 나머지 6건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TF는 “유병호 전 사무총장이 전현희 전 위원장의 상습 지각 등 제보를 처음 입수해 이를 관련 부서에 전달하고 감사 착수를 지시”했는데, “이례적이거나 지침과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실지 감사(현장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TF는 그러면서 “제보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 등을 위한 자료 수집도 거치지 않고, 실지 감사 착수 결정을 먼저 한 후 감사할 ‘꺼리’를 찾아가는 일정으로 진행했다”고 했다. 바로 현장 조사에 들어간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TF는 감사팀이 다른 감사 보고서를 처리하고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감사를 시작한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TF 발표에 따르면, 전 전 위원장 및 권익위와 관련해 들어온 제보 13건 가운데 4건은 감사팀이 현장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접수된 것이었다. 감사팀이 일단 감사를 시작해 놓고 감사해야 할 문제점을 찾았다는 TF 발표와 스스로 어긋난다.
TF는 전 전 위원장에 관한 감사 보고서가 감사위원회의에서 의결된 뒤 2023년 6월 9일 시행·공개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감사 보고서가 시행되려면 주심 감사위원이 최종 보고서를 ‘열람 결재’해야 하는데, 주심위원의 열람 결재를 ‘패싱’하기 위해 주심위원을 결재선에서 빼고 나머지 사람들이 결재를 해서 감사 보고서를 시행한 뒤 주심위원을 결재선에 다시 넣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TF는 당시 감사원 사무처가 “전산 조작”을 한 것이라고 봤다.
TF는 당시 사무처가 감사 보고서를 감사위원회의에서 의결된 대로 시행되지 않고, 전 전 위원장에 대한 비난 문구를 임의로 추가했다고도 했다. 전 전 위원장의 상습 지각과 관련해 “감사원의 분석 결과, 근무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해당 일자에 대해 전현희 위원장이 소명하지 않은 것은 기관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문구가 최종 보고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TF는 당시 사무처가 전 전 위원장이 감사원에 출석해 조사받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는데도 전 전 위원장을 감사 방해 혐의로 수사 기관에 수사 요청했다고 봤다. 조은석 당시 감사위원을 공무상 비밀 누설과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 요청했던 것에 대해서도 “사무처는 (당시) 감사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면담 조사나 담당 과장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확인하고도, 주심위원이 의결 내용과 다르게 감사 보고서 내용을 삭제 또는 변경하도록 지시 또는 압박했다고 수사 요청서에 사실과 다르게 기재했다”고 지적했다.
TF가 이날 발표한 조사 결과는 전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감사원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그동안 감사원은 특히 전 전 위원장 감사의 주심위원이었던 조 위원의 ‘열람 결재’를 받지 않고 감사 보고서를 시행한 것에 대해 “주심 감사위원이 결재하지 않으면 감사 결과가 시행될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해 왔다. “규정에 따르면 주심 감사위원은 열람을 할 뿐 결재할 권한이 없고, 만약 주심 감사위원이 결재하지 않는 한 감사 결과가 시행될 수 없다면, 주심 감사위원 1명의 의사로 감사위원회의 의결 내용대로의 시행을 막을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TF는 전 전 위원장 감사 전반에 위법·부당 행위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감사원이 그동안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는 보도 참고 자료를 배포해 온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TF는 이러한 ‘점검 결과’를 지난 14일 유병호 전 총장 등을 수사 중인 공수처에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점검 결과의) 세부적인 내용은 공수처에서 수사 중이므로 향후 수사 완료 시점 등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최재해 당시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하면서, 조은석 전 감사위원의 열람 결재를 건너뛰고 감사 보고서를 시행한 것은 조 전 감사위원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