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49개 중앙행정기관에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를 설치해 공무원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하자 공직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무엇을 문제 삼을지 모르겠다”는 불안부터 “이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게 된 일”이라는 체념, “공산국가나 할 법한 숙청을 하겠다는 것”이란 분노 섞인 반응도 나왔다.
총리실과 각 부처에 설치되는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두고도 무고(誣告)와 인신공격이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한 공무원은 “조사가 끝나는 내년 2월까지 국장급 이하 인사도 멈춘다는 의미”라며 “손발을 묶고 어떻게 새 정부 정책을 추진하겠느냐”고 했다.
범정부 조사를 이끌게 된 총리실은 12일 총리실에 설치되는 ‘총괄 TF’에 ‘민간 전문가’를 5명가량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총괄 TF는 공무원 조사·처분 기준을 제시하고 여당과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규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각 부처에 조사를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작업에 민간 인사들이 관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총리실은 법률 전문가와 군(軍)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가에선 “현 정부와 성향이 맞는 인사들에게 공직자 솎아내기 작업을 맡기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공직 사회 활력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한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병 주고 약 주기”라고 했다.
◇“공산국가인가” “범죄자 취급하나”… 내란 가담 색출에 부글부글
총리실은 지난 11일 ‘TF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는 ‘내란 참여’,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것은 ‘내란 협조’로 보겠다고 했다. 또 공직자가 ‘내란의 위법성’을 인지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조사하겠다고 했다. 계엄이 해제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될 때까지 4개월간의 ‘권한대행 체제’ 기간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사정 기관 한 공무원은 “재판은커녕 특검 수사도 끝나지 않아서 무엇이 내란이었는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내란의 일련의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결국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 정부에서 일한 죄를 묻겠다는 것 같다”고 했다.
◇“전 정부서 일한 죄 묻겠다는 것 같다”
총리실은 당장 인사 조치를 면한 사람에 대해서도 조사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보관하고 앞으로 인사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산업 부처 한 공무원은 “정말 내란에 연루됐다면 수사와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런 사람은 징계도 당연히 받는다”며 “자기들 보기에 마음은 안 드는데 형사처벌은 못할 것 같은 사람은 낙인이라도 찍어 두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총리 직속 기관 공무원은 “형사처벌도 징계 대상도 아닌 사람까지 기록을 남겨 승진에서 배제하겠다는 건 대놓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겠다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그런 일 했다고 탄핵까지 당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TF에 ‘제보 센터’를 두고 제보를 받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온다. 지난 정부 때 대통령실에 파견돼 근무했던 경제 부처 공무원은 “무슨 제보를 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내용을 지어내 제보하고 ‘정확한 상황은 조사해 봐야 안다’고 하면 그만 아니겠느냐”고 했다.
TF가 조사 대상 공직자들의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겠다고 한 데 대해 한 사정 기관 공무원은 “자발적 제출을 유도한다고 해놓고, 비협조하면 직위 해제하고 수사 의뢰하겠다고 한다”며 “제출 강요이고, 영장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검사는 “내란 종식을 핑계로 검사들 업무와 사생활을 다 까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 부처 간부는 “비상계엄 당일이든 직후든 업무상 윗선과 소통하지 않은 공무원이 누가 있겠느냐”며 “그것만으로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겠다는 것이고 모욕적”이라고 했다.
총리실은 합동참모본부·검찰·경찰·총리실·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국방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소방청·해양경찰청 등 12개 기관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했다. 행안부 한 공무원은 “당시 장관도 계엄 당일에나 계엄 사실을 알았을 텐데, 일선 공무원들이 어떻게 계엄을 미리 알고 동조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한 사정 기관 관계자는 “우리 기관에 설치된 TF가 ‘우리 기관에서는 협조자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하면 윗선에서 ‘그렇구나’ 하고 끝내겠느냐”며 “결국 현 정부와 거리가 있는 공직자들을 표적으로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사 대상인 49개 부처 소속 공무원은 75만명이다. 관가에선 과장 이상 간부급 공무원이 조사와 징계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총리실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그럴 수는 있지만 조사 단계에 직급을 구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헌법 존중 TF’ 다음 날 공직자 처우 개선 발표… “병 주고 약 주나”
공직 사회가 술렁이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이날 지난 7월 발족한 ‘공직 사회 활력 제고 TF’의 논의 사항을 중간 발표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공직 사회에 만연한 ‘감사 공포’를 제거해야 한다”며 “올해 감사 사무 처리 규칙을 개정하고 내년 상반기에 감사원법을 개정해, 정책 감사 폐지를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무원에 대해) 직권남용죄가 정치 보복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직권남용죄 요건을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강 실장은 이날 중앙 부처의 당직실을 폐지하고 재택 당직을 확대하며, 특별 성과 공직자에 대해서는 1인당 최대 3000만원 포상금을 지급하는 처우 개선 계획도 내놨다. 전직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가 하겠다는 ‘내란 협조’ 공무원 색출 작업도 감사가 아니냐”며 “병 주고 약 주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