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 전경. /뉴스1

정부가 1조7032억원을 들인 ‘지방자치단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 혁신 사업’(RIS 사업) 예산 408억원이 적정하지 않게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4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단장 김영수 국무1차장)에 따르면, RIS 사업은 교육부가 인구 감소 등의 위기를 겪는 지역을 돕기 위해 지방 대학을 재정 지원한 사업으로, 각 지방 대학이 해당 지역의 핵심 산업 분야와 연계해 교육 체계를 개편하고 지역에 정주할 인재를 양성하며, 지역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국비 1조1840억원, 지방비 5192억원이 들어갔다. RIS 사업의 결과로, 학생 1만9968명이 지역 핵심 산업과 연계된 교육 과정을 이수했고, 7만2367명이 취업·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러나 추진단이 RIS 사업 예산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점검해 보니, 전체 예산의 약 2.4%인 408억원, 940건이 부적정하게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RIS 사업 예산으로 수행된 산학 연구에서 연구 책임자나 기업이 연구비를 횡령하거나 목적에 맞지 않는 곳에 사용한 경우가 있었다. 연구 과제 246개 중 30개(12.2%), 연구비 1549억원 중 8억4000만원(0.5%)이 부적정하게 집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A사는 자율 주행 농기계를 개발하겠다고 해놓고, 해외에서 자율 주행 기기를 수입해다가 분해해서 부품을 얻었다. 그러고는 이 부품들을 각각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기업에게서 구매하는 것처럼 꾸며서, 재료비 1억9510만원을 빼돌렸다. RIS 사업단에는 수입한 자율 주행 기기를 재조립해 만든 농기계를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거짓으로 보고했다.

민간 기업의 연구원 B씨는 의료 기기 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기존 거래처 12곳과 짜고 각 거래처로부터 연구 재료를 구매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각 거래처에 재료비를 지급했다. 그 뒤 재료비를 본인과 배우자 명의 업체로 돌려받는 수법으로 1억5608만원을 빼돌렸다. C사는 3년 전 개발한 제품의 시제품을 새로 개발하는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고, 거래처에 관련 재료비 명목으로 7700만원을 줬다. 이 금액은 C사가 거래처에 갚아야 할 금액이었는데, RIS 사업 예산으로 대신 갚은 것이다.

D교수는 대학에 입점한 컴퓨터용품점에 RIS 사업 연구비 카드로 3650만원을 미리 결제해 두고 이를 충전금처럼 썼다. 컴퓨터용품점에 아이패드, 무선 청소기, 발 마사지기 등을 구입하게 해 개인적으로 챙기고, 그 대금은 충전 대금에서 차감하도록 한 것이다. RIS 사업단에는 연구 재료비를 정상적으로 결제한 것처럼 가짜 거래 명세서를 냈다. 민간 기업 연구원 E씨도 인근 사무용품점에 연구 재료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결제해 두고, 실제로는 아이폰 12대, 갤럭시폰 5대, 게임기 등을 샀다. E씨가 엉뚱한 곳에 쓴 연구비는 7400만원에 달했다. F교수는 학회 참석차 해외 출장을 가면서 학회 개최지에서 3000㎞ 떨어진 곳으로 가는 왕복 항공권 685만원어치까지 연구비로 구매했다가 적발됐다.

RIS 사업 관련 계약에서는 입찰 담합, 계약 절차 위반 등의 부적정 행위가 있었다. RIS 사업과 관련해 이뤄진 계약 1만1229건 가운데 339건(3.0%), 계약 금액 3015억3000만원 가운데 318억4000만원(12.6%)이 부적정하게 집행됐다.

예를 들어, 한 RIS 사업단의 기자재 구매 입찰에는 3개 회사가 번갈아 가며 응찰했는데, 이 3개 회사는 한 가족 구성원이 각각 대표를 맡고 있는, 사실상 하나의 업체였다. 이들은 각 입찰에 대해 한 회사를 주 응찰자로, 다른 회사를 ‘들러리’ 응찰자로 세워 계약 37건을 따냈다. 계약 금액은 총 14억7099만원이었다. RIS 사업단이 낙찰자가 제시한 금액보다 더 높거나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1억2300만원어치, 최저가를 제시하지 않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계약서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경우가 5400만원어치,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계약 업체의 요청에 따라 계약 금액을 늘려준 경우가 1억6600만원어치, 계약 업체가 납품 기한을 지키지 못했는데도 불이익을 주지 않은 경우가 8억7400만원어치 있었다.

RIS 사업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은 지방 대학이 사업과 무관한 곳에 돈을 써버린 경우도 있었다. RIS 사업비를 대학 도서관 리모델링이나 대학 홍보, 골프공 세트 등 고가의 기념품 제작에 써버린 경우였다.

RIS 사업으로 수행한 연구 성과가 엉터리인 경우도 여러 건 적발됐다. G사는 RIS 사업 연구 과제 성과가 미진하자, 지난해에 마친 연구 과제 결과 보고서를 편집해 새로운 성과인 것처럼 제출했다. H교수는 중소벤처기업부의 다른 사업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아 작성한 논문을 RIS 사업 실적인 것처럼 중복 등록했다가 적발됐다.

추진단은 부적정하게 집행된 예산은 환수하도록 하고, 연구비 등을 고의적으로 횡령한 것으로 의심되는 7건은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RIS 사업과 관련해 추가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적발된 사례에 대해서는 사업비 환수와 수사 의뢰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