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가 23일 경북 경주시 엑스포대공원에 마련된 2025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경제 전시장을 찾아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민석 국무총리는 23일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한덕수 전 총리가 지난 대선 시기에 거의 끝을 내려고 했었다”며 “그랬다면 우리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렁에 빠진 상태에서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한국에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대선 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면 한국에 더 불리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김 총리는 이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북 경주를 찾아 준비 상황을 최종 점검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총리는 “(이재명) 정부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을 잘했나, 못했나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대로라면 미국 측의 최초 요구가 우리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는 점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공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때인 지난 4월 정부가 한미 관세 협상을 진행했을 때만 해도, 미국 측은 관세율을 낮추는 대신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라는 식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 관세 인하와 대규모 대미 투자를 맞바꾸자는 발상은 지난 7월 일본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전격 타결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미국에 제안하면서 급부상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미 관세 협상의 대선 전 조기 타결이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내놓는 내용이 됐을 것이라는 주장은 당시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총리는 오는 31일과 다음 달 1일에 진행되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전후로 한 기간에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진행돼 있지만 막판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총리는 “초반에 간극이 상당히 크다고 했던 쟁점들이 좁혀진 것만은 분명하다”면서도 “막판 쟁점이 APEC 정상회의 시기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김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말 방한하면서도 APEC 정상회의에는 불참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두 방한해 양자 회담을 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해서는 “사실은 (경주 APEC 정상회의 준비 기간) 중간에 (미·중 정상이 한국에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고비가 있었다”며 “결국 (양국) 정상이 참여하는 것으로 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경주 APEC 정상회의) 성공 가능성은 열어 놨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총리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간, 한미 간 (현안들이) 일정하게 정리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김 총리는 “(미·중 정상이 한국에서)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데,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지 않겠느냐”며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한국이 미·중 갈등의 대타협으로 이어지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주 APEC 정상회의가 북한을 초청하지 않기 때문에, 경주가 무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한국 내 다른 지역에서 회동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김 총리는 경주 APEC 준비 상황에 대해서는 “마지막 남은 1%는 하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준비가 99%는 끝났다는 것이다. 김 총리는 “(이재명 정부 출범 전에는) 인프라나 모든 것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았다”며 “걱정이 태산이었고 암담했다”고 했다. 김 총리는 그러나 이제는 “공간 면에서는 (경주 APEC 정상회의장이) 규모가 크거나 하지는 않지만, 한국적인 느낌을 잘 갖춰서 정돈됐다”며 “(APEC 회의에 참석하는) 정상들과 여러 CEO(최고경영자)들이 쾌적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를 해낼 수 있을까’ 했는데, 지금은 ‘경주에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