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운영 혁신 태스크포스(TF)’는 최근 감사원 직원들의 휴대전화로 온라인 설문조사 링크를 보냈다. 설문 페이지에서 TF는 “감사원이 비판받아 온 감사 업무에 대해 직원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자 한다”며 “개진해 준 의견에 대해서는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했다.

TF는 사건을 7개 지목해 의견을 달라고 했다. 국가 통계 조작,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의 원전 경제성 조작,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은폐·왜곡,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비위,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 감시초소(GP) 철수 부실 검증,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정식 배치 고의 지연 등의 의혹에 대한 감사와, 대통령실·관저 용산 이전 관련 감사가 그것이었다. 앞의 6건은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정치 감사’였다고 주장한 것이고, 마지막 감사 건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봐주기 감사’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여당이 ‘문제 감사’로 지목한 건들에 대해서 당시 감사팀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밀고하라는 이야기 아니겠느냐”고 했다.

감사원 운영 혁신 TF는 지난달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정상우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정부에서 잘못된 감사 운영 문제점을 규명하겠다”고 밝힌 직후 구성된 것이다. 감사관 42명이 동원된 TF는 민주당이 문제 삼은 감사 7건을 했던 동료 감사관들을 대상으로 감사를 왜 시작했는지, 왜 지금과 같은 결론을 내렸는지 등을 캐묻는 ‘진상 규명’ 작업을 하고 있다. 전직 감사원 관계자는 “기존 감사 보고서 내용을 뒤집기 위한 밑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문재인 정부의 통계 조작 사건이다. 감사원은 2023년 9월 문 정부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임기 거의 전 기간 동안 집값과 소득, 고용에 관한 정부 공식 통계를 조작해 왔다는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4명 전원과 국토교통부·한국부동산원·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간부들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이듬해 3월 11명을 기소했고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올해 4월 903쪽에 달하는 감사 보고서를 공개해 통계 조작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국토부에는 집값 통계 조작에 연루된 전현직 간부 15명에 대해 징계 등의 조치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사건 처리에 대한 감사원 기조도 바뀌었다. 감사원으로부터 직원을 징계하라는 요구를 받은 부처는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 국토부 전현직 간부 15명 전원이 감사원에 감사 결과 재심의를 청구했고, 국토부 징계 절차도 재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감사원도 재심의 결론을 내리기 전에 감사원 감사 자체의 ‘잘못’이 없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감사 7건을 주도했던 감사원 간부들은 최근 인사 발령으로 감사 업무에서 배제됐다.

그래픽=김현국

반면 감사원으로부터 징계 필요성이 제기된 국토부 간부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일부 ‘한직’으로 간 경우는 있지만 상당수는 국토부 주요 보직이나 산하 기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실에 따르면, 문 정부 때 청와대나 국토부에 있으면서 부동산원 관계자들에게 통계 조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전현직 국토부 공무원 일부는 징계 시효(3년)를 넘겨 징계 대상이 되는 것을 면했다.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서 부동산원 측에 “A지역 확정치(집값 상승률)가 너무 높다. 1%를 넘으면 안 되니 이를 낮춰달라”고 발언한 것으로 적시된 간부를 포함해, 징계 시효가 지나 대신 ‘인사 자료 통보’ 조치를 받은 3명은 국토부 고위 간부나 지방항공청장, 국제기구 파견 근무자로 재직 중이다.

감사원이 아파트 가격 통계 조작에 적극 가담했다며 해임을 요구한 실장급(1급) 간부는 2023년 말 직위 해제됐으나 이후 징계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3년째 대기하며 보수를 받고 있다. 감사원이 정직시킬 것을 요구한 2급 간부도 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 재직 중이다. 경징계 대상이 된 다른 7명도 국토부 과장이나 재외공관 주재관 등으로 정상 근무하고 있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의 압박으로 5년간 102차례 이상 조작됐다고 밝힌 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통계는 정정·개편 없이 그대로 작성·공표되고 있다. 감사원의 중간 결과 발표 직후 국토부는 관련 통계 작성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위한 연구 용역의 결과 발표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김은혜 의원은 “통계 조작 관계자들이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국토·부동산 정책 요직에 계속 포진하고 있는 것은 통계 조작 감사 결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법과 원칙을 어기더라도 권력의 편에 서면 승승장구한다는 불의의 역사가 문 정부에서 이재명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를 기각하면서, “전현희 권익위원장 비위 감사는 표적 감사였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사드 배치 지연 감사에서 감사원의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취지의 국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文정부 국가 통계 조작 사건

문재인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집값 상승을 감출 목적으로 한국부동산원에 아파트 가격 상승률 통계를 조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등 주택·소득·고용 통계를 조작·왜곡했다는 의혹 사건. 감사원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년여간 통계가 100차례 이상 조작·왜곡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와 별도로 국토부 공무원 15명을 포함해 통계 조작 관련자 31명에게 징계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