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

대형 입시 학원과 유명 사교육 강사들에게 불법으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주고 돈을 받은 교사들이 감사원의 징계 처분에 불복해 감사원에 무더기로 재심의를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재심의를 신청한 교사들은 공통적으로 ‘문제를 사교육 업체에 파는 것이 불법인 줄 몰랐다’거나 ‘정당하게 일하고 돈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교사는 없었다.

지난 2월 감사원은 교사 249명이 사교육 업체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경향을 반영한 시험 문제를 만들어주고 212억9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1인당 평균 8550만원을 받은 것이다. 감사원은 또 이 가운데 16명은 사교육 업체와 거래하면서 수능이나 수능 모의평가에 출제를 했고, 3명은 사교육 업체에 판 시험 문제를 자기 학교 내신 시험에 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런 ‘문항 거래’가 주로 사교육 업체가 EBS 수능 연계 교재나 문제집의 집필진 명단을 보고 교사에게 연락해 계약을 제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계약은 대부분 구두로 이뤄져 문서를 남기지 않았고, 단가는 일반 문항은 10여만 원, 고난도 문항은 20여만 원이었다. 교사가 직접 문항 공급 조직을 만들어 다른 교사들을 끌어들인 뒤 사교육 업체들과 거래를 튼 경우도 있었다.

감사원은 교사의 문항 판매는 본연의 업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업무를 하는 것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의 정당한 이유 없는 금품 수수를 금지한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봤다. 감사원은 그러면서 “사교육 업체가 (교사로부터 산) 문항을 활용해 강의를 제공하거나 교재를 판매하면, 이를 구입한 학생들은 다른 학생에 비해 수능이나 내신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사교육 업체에서 교습하는 문항이나 이와 비슷한 유형이 수능이나 내신 시험에 출제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야기하는 결과가 생긴다”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적발한 교사 249명 가운데 41명은 문항 거래 과정에서 단가 인상을 요구하거나 ‘전속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 경우, 다른 교사의 문항 판매를 알선하고 돈을 받은 경우, 출간 전인 EBS 교재를 사교육 업체에 유출한 경우, 탈세까지 한 경우 등으로서 법 위반 정도가 크다고 판단해, 교육부와 소관 교육청, 사립학교법인에 알려 징계하도록 했다. 나머지 208명은 교육부에 비위 유형과 경중을 고려해 적정하게 조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7일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이 징계를 요구한 교사 41명 가운데 다수가 처분에 불복해 감사원에 재심의를 청구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불복해 공직자 수십 명이 각각 재심의를 청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감사원은 지난달까지 이 가운데 11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기각 결정서에 따르면, 징계 요구에 불복해 재심의를 청구한 교사들 대다수는 문항 거래가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시험 문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에 파는 것이 금지된 행위라는 안내를 구체적으로 받은 적이 없고, 국가공무원법상 영리 업무 금지 위반에 해당되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 교사는 지금까지 교사의 문항 거래가 처벌 대상이 됐던 적이 없으므로 이번 징계도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항 거래가 아예 불법이 아니고, 사교육 업체로부터 받은 돈은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받은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감사원은 단순히 법률을 알지 못했다고 해서 문항 거래 행위의 위법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교육부가 2016년에 이미 교사가 학원 교재용 문항을 만들어주고 대가를 받는 것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 보도 자료를 내고 각급 학교에도 전파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노원구 한 고교 영어 교사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EBS 수능 연계 교재를 집필하고, 2010학년도부터 2022학년도까지 수능과 모의평가 검토위원으로 10차례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사교육 업체와의 문항 거래를 통해 6956만원을 챙겼다. 이 교사는 2022학년도 9월 모의평가 때 문항 거래 업체로부터 ‘영어 37번 문항의 출제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무슨 논리로 정답을 도출한 것인가’라는 문의를 받자 평가원 관계자에게 연락해 출제 의도를 물어 답을 듣고 이를 업체에 전달해주기도 했다. 자기가 검토위원을 했던 2022학년도 수능에서 영어 34번 문항을 두고 복수정답 논란이 일자 업체에 복수정답 가능성이 없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실제로 평가원은 영어 34번 정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이랬던 교사는 재심의에서 ‘업체에 판 문항이 유명 사교육 강사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문항 판매가 법령 위반인 줄 몰랐고, 불법으로 판단된 사례도 없다’며 ‘법령 위반인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감사원은 이 교사의 재심의 청구도 기각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적발된 교사들 대다수는 문항 거래 행위가 잘못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는데, 그러면서도 영리 업무를 할 때 해야 하는 겸직 허가 신청은 거의 하지 않았고 문항 거래 사실을 숨기려 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