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교육훈련비 집행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기관 임직원 1805명이 업무 능력 향상과 자기 계발에 쓰라며 나오는 교육훈련비로 TV와 헤어드라이어, 로봇 청소기 등 전자기기 21억원어치를 사서 개인적으로 챙겼다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적발됐다. 권익위는 각 공공기관에 교육훈련비 부당 사용을 중단시키고, 임직원들이 부당하게 챙긴 돈을 환수하라고 요구했다.

2일 권익위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고가의 전자제품을 학습 콘텐츠에 끼워 팔고 있고, 일부 공공기관 직원들이 교육훈련비로 이러한 전자제품을 개인적으로 취득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공공기관 330여 곳 모두에 지난해에 교육훈련비를 지급한 내역을 제출하도록 했다. 권익위는 이 가운데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석유공사, 한국수출입은행, 한국국제교류재단, 국립공원공단, 한국중소벤처기업유통원, 한국산업은행,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환경공단 등 10곳에서 교육훈련비가 부당하게 지급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9개 기관 임직원들은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업체들이 교육 콘텐츠에 전자기기를 끼워 파는 것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20만원짜리인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인데 100만원에 제공하면서 시가 80만원짜리 태블릿PC를 주는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그 비용 100만원을 소속 기관에 청구해 전액 교육훈련비로 지급받고 태블릿PC는 개인적으로 챙기는 것이다.

9개 기관 임직원 1805명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받은 교육훈련비 25억2852만원의 80%가 넘는 20억8241만원(82.4%)이 전자기기 구매에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TV, 갤럭시·아이폰 등 휴대전화, 노트북, 아이패드·갤럭시탭 등 태블릿PC, 로봇 청소기, 헤어드라이어 등이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5년간 10차례에 걸쳐 태블릿PC와 스마트워치, 노트북, TV, 로봇 청소기 등 11개 제품을 구매하고 교육훈련비로 853만원을 받기도 했다.

권익위는 산업단지공단과 석유공사가 교육훈련비 집행 내역 일부를 정당한 이유 없이 제출하지 않았고, 이 기관들에서 교육훈련비 부당 집행이 더 많이 벌어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단지공단에선 임직원 493명이 교육훈련비로 6억2437만원을 받아 이 가운데 5억86만원을 전자기기 구매에 쓴 것으로 확인됐는데, 산업단지공단은 다른 직원 161명이 교육훈련비 1억6369만원을 받은 내역은 제출하지 않았다. 석유공사에서도 128명이 교육훈련비로 3억3041만원을 받아 1억7816만원을 전자기기 구매에 쓴 것으로 조사됐으나, 석유공사는 다른 직원 389명에 대한 교육훈련비 8억8331만원 지급 내역은 제출을 거부했다.

권익위는 이번에 적발된 공공기관 10곳 대다수가 임직원들이 교육훈련비로 전자기기를 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으며, 공공기관들이 임직원의 전자기기 취득 목적으로 교육훈련비를 지급한다면 이는 정부의 공공기관 예산 운용 지침을 어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임직원 45명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겠다며 교육훈련비를 받아가 놓고 응시를 취소하고 응시료를 환불받아 개인적으로 챙기는 등의 방법으로 교육훈련비 805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공공기관의 교육훈련비는 예산의 목적에 맞게 임직원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며 “교육훈련비로 개인용 전자제품을 구입한 행위는 명백한 ‘예산의 목적 외 사용’으로서 부패 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유 위원장은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한 기관들에 대해서는 감독 부처에 철저한 감사와 조사를 요청했고, 기관들에는 부당 집행 교육훈련비를 환수하도록 하고 관계자를 문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시행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