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6일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현 정부의 주요 정책과 관련해서는 감사를 아예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감사원은 이미 정부의 정책 결정 자체는 감사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다. 정책 추진이나 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 행위가 있는지만을 감사하고 있는데, 새삼 ‘폐지’를 선언하면서 스스로 손발을 묶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2022년 ‘감사 사무 처리 규칙’을 제정해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 및 정책 목적의 당부(當否·옳고 그름)”는 감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못 박았다. 이전에도 감사원은 정부의 정책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일례로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후반부인 2019년 국회의 요구로 시작해 2020년 발표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타당한지를 따진 것이 아니었다. 월성 1호기 영구 폐쇄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평가 자료 조작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었다.
애초에 정책 감사를 도입한 것은 민주당 정부 시절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감사원이 정책 감사를 주로 하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했고, 이때부터 감사원의 정책 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아예 감사원에 특정 사안에 대한 정책 감사를 직접 지시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2017년 5월 감사원에 “4대강 사업의 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 대한 정책 감사를 실시하라”고 했다. 대통령이 감사원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정치 감사’를 시켰다는 논란이 일었으나, 감사원은 감사를 진행해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 효과가 없다’는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홍수 예방 효과를 0으로 계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일들로 인해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가 ‘정치 감사’란 논란이 일자, 감사원이 정부의 정책 결정 자체는 감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규칙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감사원이 정책 결정 감사 폐지를 발표한 6일 감사원 관계자는 “정책 결정에 대한 감사는 감사원이 원래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이번 발표는 이 원칙을 더욱 명확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감사원이 원래도 하지 않던 것을 ‘폐지’한다고 밝힌 배경에는 여권의 압박이 있다.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인 2022년 9월 착수한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감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집값·소득 관련 통계 작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 결정 자체에 대한 감사는 아니었고, 통계 조작이나 왜곡 문제를 살펴본 것이었다. 문 정부가 주한 미군 사드의 한국 정식 배치를 고의로 지연했다는 의혹에 대한 감사에서도 감사원은 문 정부가 사드 운용을 제한하기로 중국과 약속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외교 정책 결정 사안이라며 처음부터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해 정권이 바뀐 후 부당하게 책임을 물었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당 서영교·이성윤·전현희 의원 등은 지난달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사드 배치 고의 지연 의혹’ ‘탈원전 정책’ ‘통계 조작’ 관련 감사와 관련해 “표적 감사, 보복 감사, 먼지 털기식 압박 감사”라고 했다. 허영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달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감사원이 무너뜨린 건 국가 시스템뿐만 아니다. 공직자의 영혼마저 철저히 짓밟았다”며 “통계 조작 감사는 명백한 표적 감사이자 정치 감사”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 대통령까지 나서자 감사원이 정책 결정 감사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감사원 안팎에선 “정책 집행에 대한 감사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전직 감사원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말만 놓고 보면 감사원의 애초 원칙을 그대로 지켜 나가겠다는 것이지만, 여권이 ‘정책 감사’ 자체를 문제 삼은 상황에서 감사원이 감히 정부 정책 집행을 들여다보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통상 정권 집권 초기에 시작한 정책의 집행 과정이나 효과를 정권 후반부에 감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재명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그런 감사조차 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얘기다.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일도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감사원은 지난 5월 ‘문 정부가 비무장지대(DMZ) 내 북한 GP(감시초소) 11곳이 불능화됐다고 거짓으로 발표했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감사 결과 전체를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해 갓 집권한 민주당 정부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었다. 감사원 한 실무자는 “앞으로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사건이 있으면 ‘정책 결정 감사’라는 이유를 대며 감사를 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