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조개 개체 수 유지를 위해 양식한 치패(稚貝·어린 조개)를 바다에 풀어놓는 정부 사업을 ‘벌떼 입찰’로 따낸 뒤 자연산 조개를 납품하는 수법으로 68억원을 챙긴 업체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적발됐다.
권익위는 201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7년 6개월간 전국 지방자치단체 20곳과 공공기관 2곳이 시행한 조개 종자 방류 사업을 전수 조사해, 수산물 업체 ‘A홀딩스’의 사기와 입찰 방해 혐의를 적발했다고 30일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는 어패류 등 수산 자원의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양식한 치어와 치패 등을 바다에 방류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매년 500억원 안팎의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되고, 이 가운데 약 100억원이 치패 방류 사업에 들어간다.
권익위는 지난해 8월 ‘치패 방류 사업에 응찰한 일부 업체가 낙찰받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들러리 업체를 참여시키고, 낙찰되면 정부가 요구한 것과 다른 물품을 납품한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권익위는 치패 방류 사업의 문제가 특정 지자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치패 방류 사업 전체의 문제일 수 있다고 보고, 정부와 지자체가 2018년 이후 시행한 사업을 전수 조사했다.
조사 결과, ‘A홀딩스’와 관련 업체들이 80개 사업 108억원어치를 ‘벌떼 입찰’ 수법으로 따낸 것으로 드러났다. A홀딩스는 실질적으로 한 사람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A홀딩스와 특수관계인 업체가 12곳 더 있었고 이 업체들까지 치패 방류 사업에 무더기로 응찰해온 것이다. 이 업체들은 A홀딩스 대표가 이사를 맡고 있거나, A홀딩스 직원이 명목상 대표이거나, A홀딩스와 아예 대표이사나 주소가 같았다.
이 A홀딩스 관련 업체들 가운데 한 곳이 최저가로 낙찰된 상태에서 다음 순위 업체도 A홀딩스 관련 업체라면, 낙찰된 업체가 응찰을 포기해 사업권을 다음 순위 업체로 넘겼다. 이런 식으로 A홀딩스 관련 업체들은 사업권을 차지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았다.
사업을 따낸 A홀딩스 관련 업체들은 정부에 양식한 치패를 납품하지 않았다. 각지의 어촌계에서 자연산 조개를 사들이거나 갯벌에서 직접 조개를 캐낸 뒤, 이 가운데 작은 조개를 추려 정부에 양식 치패라고 거짓으로 납품했다. 바다에서 치패를 채취해 다시 바다에 풀어놓으면 조개 개체 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전혀 없다. 사실상 정부를 상대로 사기를 쳐서 치패 방류 사업 예산만 챙긴 것이다. 권익위는 A홀딩스 관련 업체들이 최소 27개 사업에서 사업비 68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공직자들이 A홀딩스 관련 업체들의 벌떼 입찰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한 지자체의 과장급 직원은 A홀딩스 관련 업체들에 수천만원을 요구해 챙겼고, 한 공공기관 직원은 A홀딩스를 조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러 A홀딩스 관련 업체를 대신 조사하기도 했다.
권익위는 A홀딩스와 관련 업체 관계자들을 사기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입찰 방해 등 혐의로 해양경찰청에 이첩했다. A홀딩스를 묵인하거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는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도 해경에 넘겼다.
권익위 유철환 위원장은 “수산 종자 방류 사업이 어민 소득 증대라는 본래의 사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앞으로도 권익위는 공공 재정이 투입되는 국가와 지자체의 사업이 부패 없는 공정한 사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