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시가 맹지(盲地)인 시장 소유 땅에 건축 허가를 내주기 위해 인접 제방 길을 건축법상 도로로 불법 지정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김 전 시장은 시가 예산 1억여원을 불법으로 전용해 이 제방 길을 확·포장하도록 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감사원은 수사 기관에 김 전 시장의 직권 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고, 양산시에 관련 공무원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이 23일 공개한 ‘공직 비리 기동 감찰’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 전 시장과 A씨는 각각 양산천 제방 옆에 각각 1530㎡(약 463평), 2146㎡(약 649평) 토지를 갖고 있었다. 제방 위에는 폭이 3m가량 되는 길이 있었으나, 폭이 4m에 미치지 못해 건축법상 도로가 아니었고, 김 전 시장과 A씨의 땅은 모두 법상 도로와 닿아 있지 않은 맹지였다.
A씨는 2019년 2월 양산시에 제방 길을 진입 도로로 사용해 자기 맹지에 소매점을 차리겠다며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제방 길이 건축법상 도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맹지에는 건축 허가를 내줄 수 없었으므로 양산시는 신청서를 반려했어야 했다. 그러나 양산시는 A씨 측에 신청서를 ‘보완’하게 했고, A씨 측은 신청서에 첨부하는 도로관리대장에 제방 길의 너비가 3.1~14.5m가 아니라 6.0~12.4m라고 거짓으로 써서 냈다. 양산시는 이를 근거로 2019년 5월 제방 길을 도로로 지정해 공고했고, A씨에게 건축 허가도 내줬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 전 시장의 아들 B씨가 김 전 시장 땅에 카페를 차리겠다며 건축 허가를 신청했고, 양산시는 2020년 2월 김 전 시장 땅이 이제 도로와 인접해 있다며 B씨에게도 건축 허가를 내줬다.
2020년 4월에는 양산시 간부가 부하 직원에게 ‘시장님 농장 옆 진입로를 확장하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법상 도로 요건이 안 되는데도 불법으로 도로로 지정한 제방 길을 진짜 도로처럼 확장하라는 것이었다.
그해 예산에 이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한 예산은 들어 있지 않았으므로, 양산시 공무원들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예산을 확보하고 공사를 하겠다’고 김 전 시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김 전 시장은 아무 대답 없이 양손 손가락 끝을 서로 맞대는 자세를 취했다. 양산시 공무원들은 김 전 시장이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런 자세를 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 관련 공무원 3명이 다른 부서로 발령됐다.
새로 온 공무원들은 ‘제방 도로 확장하라는 시장님 지시를 시행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인수인계서를 넘겨받았고, 김 전 시장으로부터는 ‘확장 공사는 언제 시작할 수 있냐. 빨리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담당 공무원들은 다른 도로 정비 사업 예산 1억여원을 전용해 확장 공사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김 전 시장은 2020년 11월 계획안을 결재했다. 이후 2021년 3월까지 제방 길 134m 구간을 폭 8m로 넓히고 포장하는 공사가 진행됐다.
2021년 5월 김 전 시장 땅이 특혜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김 전 시장 아들은 카페를 세우겠다는 건축 허가 신청을 취소했다. 그러나 제방 길의 도로 지정은 취소되지 않았고, 김 전 시장 아들이 언제든 다시 건축 허가를 신청하면 허가가 나올 수 있는 상태가 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또 김 전 시장 땅과 A씨 땅은 모두 맹지에서 벗어나면서 땅값이 올랐다.
김 전 시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제방 길 도로 지정과 A씨, 아들이 신청한 건축 허가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내가 도로 확장을 지시했다는 것은 물적 증거가 없고 공무원들의 단순 진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내가 확장 공사를 지시했다는 증거도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김 전 시장이 확포장 공사를 지시한 것은 다수의 증언과 기록에 의해 확인되고, (예산을 전용하지 않고) 별도 예산을 확보해 추진하겠다는 실무자 보고를 받고 침묵으로 일관한 행위는 거부의 의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김 전 시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사원은 김 전 시장의 비위 내용을 인사혁신처에 알려 김 전 시장이 앞으로 공직에 취임하게 될 경우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 또 제방 길을 도로로 불법 지정하거나 예산을 불법 전용해 확장 공사를 한 공무원 2명은 징계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