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철 신임 법제처장이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법제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원철 신임 법제처장이 16일 취임식에서 “그동안 언론과 학계에서 모법(母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는 시행령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임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서 만들어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 등의 내용 일부를 하위 법령 개정을 통해 무력화한 것을 두고 ‘시행령 통치’라며 비판했는데, 조 처장도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조 처장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시행령 제·개정 등) 행정입법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대해 그동안 언론과 학계에서는 사실상 ‘법치주의를 우회하고 잠식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고 했다.

조 처장은 이어서 법제처 직원들에게 “우리가 법제 업무를 함에 있어, 이 법령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지, 이 조항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닌지, 단순히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은 아닌지, 국민의 자유와 권익을 어느 정도 제한하게 될지, 공익과 사익이 어디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를 화두처럼 들고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 처장은 그러면서 “모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도 따져보아야 한다고 했다.

조 처장은 “행정입법은 일관되고 통일된 행정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번 만들어진 법령은 일선 행정기관에서 국민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는 법규인 것처럼 인식해 규제의 질곡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고 했다.

조 처장은 법제처 직원들에게 “여러분이 법제 업무에 임해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놓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규제의 문제가 풀리는 일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조 처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대장동 사건과 위증 교사 사건 1심을 변호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조 처장을 신임 법제처장으로 임명했다.

◇조원철 법제처장 취임사 전문

반갑습니다. 이번에 법제처장으로 임명받은 조원철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36년간 판사와 변호사로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온 경험이 있기에 법제처장이라는 중책을 감히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법제처장으로 내정된 후 법제 업무에 대하여 들여다보면서 느꼈던 바를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행정입법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 대해서 그동안 언론과 학계에서는 사실상 법치주의를 우회하고 잠식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나아가, 모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는 시행령에 대한 문제 제기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법제 업무를 함에 있어서 종래의 방식대로 기계적으로 찍어내듯이 법령을 양산할 것이 아니라 이 법령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실제 현실에 있어서는 어떻게 작동하게 될 것인지, 이 조항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닌지, 단순히 행정 편의를 위한 것은 아닌지, 모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 국민들의 자유와 권익을 어느 정도 제한하게 될지, 공익과 사익이 어디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를 화두처럼 들고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행정입법이 일관되고 통일된 행정을 위하여 불가피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처음 의도와는 달리 한 번 만들어진 법령은 그것이 설령 침익적이 아닌 수익적인 내용이라 하더라도,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마치 이를 국민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는 법규인 것처럼 인식하여 규제의 질곡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동안 정부가 바뀔 때마다 모든 정부가 규제의 대폭적인 철폐를 외쳤지만, 모두 용두사미에 그쳤습니다. 이는 행정입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 과도한 양산이 오랜 기간 지속되다 보니 행정부 공무원들의 의식이 그쪽으로 고착되어 다른 길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합니다.

법제처는 각 부처의 법제 업무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전문 법제기관이고, 여러분은 이러한 법제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입니다. 여러분이 법제 업무에 임하여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을 놓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규제, 과도한 규제의 문제가 풀리는 길이 비로소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정체되다 못해 이제는 미국이나 유럽보다도 성장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행정법령의 과감한 정비는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는 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마지막으로 법제처의 업무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과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법제처에서 관장하는 법령 정보는 그 양의 방대함이나 내용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법제처의 한정된 인력으로 효율적으로 다루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있습니다. 더구나 일반 국민이나 기업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법령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용적으로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AI의 도입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발전의 필수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AI의 가속적인 발전을 고려할 때 1년의 지체만으로도 도저히 선발 주자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AI의 추론 기능을 업무에 도입하였을 때 기존의 법제 업무나 국민들에 대한 법령 정보의 제공이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앞으로 법제처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행정법령의 전면적인 정비를 위해서도 AI의 도입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여러분들의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께서는 오랫동안 성장이 정체되어 국민들이 고통받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AI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아울러 성장에 방해가 되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정리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법제처는 이러한 국정 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는 데 매진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