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는 18일 실손의료보험이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만성 질환자의 약값도 보장하도록 하라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권고했다.
실손의료보험은 건강보험 가입자가 병·의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한 진료비와 약제비 가운데 가입자 본인 부담금의 최대 90%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민간 보험 상품으로, 건강보험을 보충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돼 있다. 2023년 말 기준 국민 3997만명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박종민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그러나 실손의료보험은 입원 치료 보장과 통원 치료 보장 간에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며 “입원 치료 보장은 연간 5000만원 한도로 각종 수술비·치료비·원내 처방 조제비는 물론 퇴원 시에 처방받은 약제비까지 폭넓게 보장하는 반면, 통원 치료 보장은 10만~30만 원의 일당 보장 한도 내에서 외래 진료비와 처방 조제비를 합산해 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당뇨나 고혈압과 같이 꾸준한 약물 치료가 필수적인 만성 질환자의 경우, 통원일당 보장 한도를 초과하는 장기 처방 조제비에 대한 보장이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만성 질환을 갖고 있어 병원을 방문해 한번에 여러 달치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서 약을 타 가는 경우, 약값이 10만원을 넘어가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다 보면 실손의료보험이 통원 치료 하루당 보장하는 의료비 상한을 넘어가서 나머지는 가입자가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권익위가 조사해 보니, 한 달치 이상의 장기로 약을 처방받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약값이 10만원을 웃돌았고, 이로 인해 약 44%는 실손의료보험 하루 보장 한도를 넘겨 차액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실비보험 보장을 다 받기 위해 병원을 여러 날 방문해 ‘쪼개기 처방’을 받기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실손의료보험에 ‘장기 처방 조제비’ 보장 항목을 별도로 만들라고 권고했다. 한 번에 30일치 넘는 약을 처방받는 경우, 약값이 실손의료보험 하루 보장 한도를 넘기더라도 장기 처방 조제비 연간 한도 내에서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권익위는 ‘노후·유병력자 전용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표준 약관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박 부위원장은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됨에 따라 다수의 보험사가 판매 중인 노후·유병력자 전용 실손의료보험은 현재 금융 당국의 표준 약관이 없어 가입 연령 기준이 보험사별로 상이하거나, 만성 질환자를 주 대상으로 하는 유병력자 실손의료보험에서 통원 치료 처방 조제비를 보장하지 않는 등 소비자 권익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박 부위원장은 이번 권고에 대해 “당뇨, 고혈압, 관절염 등 만성 질환은 꾸준한 약물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증 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고, 이는 국민 건강뿐 아니라 건강보험 및 실손의료보험의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만성 질환자에 대한 약제비 보장을 강화해야 국민 건강이 증진되고 사회적 비용도 절감된다”고 했다. 또 “노후·유병력자 전용 실손의료보험에 정부가 명확한 설계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보험 계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급변하는 보험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권익위 권고를 수용해, 오는 11월까지 관련 내용을 ‘보험업감독규정’과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권익위는 밝혔다.
다만 이번 권익위 권고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이 곧바로 장기 처방 조제비 보장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관련 규정을 고치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 보험사를 감독하면, 민간 보험사가 앞으로 내놓는 실손의료보험 상품의 계약 내용에 장기 처방 조제비 보장이 반영될 수 있다. 기존 가입자의 계약에는 반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