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10일 “국가 대전환의 시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란으로 악화일로에 빠져버린 현재의 위기를 정확히 드러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전 인사청문회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고 “IMF보다 더한 제2의 IMF 위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후보자는 현 상황을 1997년 외환 위기 때보다 심각한 위기로 진단하는 이유에 대해 “잠재 성장률이 그때보다 훨씬 낮고, 성장의 추세가 당시에는 완만한 상승이었는데 지금은 하강 내지 침체이며, 산업적 환경이 어느 때보다 어렵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주변 주요 5국과의 관계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했다. “물가, 부채, 국가 재정 등의 상황이 만만치가 않다”고도 했다.

김 후보자는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관세 협상을 앞두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판이 바뀌는 상황이고, 그것을 담당해야 할 직전 정부는 유산을 남겼다기보다는 부채를 극심하게 남겨놓은 상태로 떠나갔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위기라고 진단한 상황에 대한 대책에 관해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를 오래 생각해 왔고, 대통령님과도 오랫동안 토론해 왔기 때문에 일정한 생각이 있다”면서도 “인사청문회 사전 준비 과정에서 저에 대한 신상 검증을 충분히 마친 후에, 국회 검증(인사청문회)에서 충분히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한편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검증 절차에 대해 “모든 신상 질문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답하고, 미처 못 챙긴 일신의 부족함이 있다면 지체 없이 양해를 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회의 본 청문 과정(인사청문회)은 국가의 미래를 논하는 진지한 정책 검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과거 미 문화원 점거 농성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력에 대해선 “1985년 서울 미 문화원 사건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사실상 최초로 광주 문제를 세계에 알리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미국이 (1980년에) 전두환·노태우씨에 의한 한국군의 이동을 허용했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던 사건”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는 그러면서 “그 일(미 문화원 점거)을 통한 한국과 미국의 각성으로, 이번 빛의 혁명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일관되게 한국의 국민과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군사 반란 세력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던 역사적 경험을 축적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반미주의자라는 의혹에 대해 “제가 동년배 중에서 해외여행 자율화 이후에 비교적 해외 경험을 빨리, 많이 한 편에 속한다”며 “미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했고, 전임 (한덕수) 총리와 같은 학교(하버드대)를 다녔고, 미국 헌법에 관심이 있어서 미국 변호사 자격도 가졌다”며 일축했다.

김 후보자는 또 “그래서 제가 미국에 대해 비교적 이해가 깊고, 미국 정치에서 핵심적인 인사들, 트럼프 정부의 핵심적인 인사들과 개인적인 교분이 있다”며 “제가 총리로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한미 관계를 풀어가는 데 일정한 기여로 작동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