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6·25 전쟁 당시 북파 공작원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도종순씨 위패봉안식을 진행하고 있다. 고인의 영정 사진 뒤를 유철환(휠체어 탄 이) 국민권익위원장이 따라가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

6·25전쟁에서 북파 공작원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숨진 고(故) 도종순씨가 71년 만에 정부로부터 전사(戰死)를 인정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도씨 유가족과 유철환 권익위원장, 권대일 서울현충원장, 김주용 국가보훈부 기획조정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도씨의 위패를 봉안했다고 3일 밝혔다.

도씨의 위패가 현충원에 봉안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도씨가 2012년 파묘(破墓)나 다름없는 위패 철거를 당했다가 다시 예우를 받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국군 전사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것이 당시의 위패 철거 이유였다.

고(故) 도종순씨

도씨는 1932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목수의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도씨는 열아홉 살 생일을 며칠 앞둔 1951년 2월, 같은 동사무소에 근무하던 또래 둘과 함께 육군 첩보부대(HID)에 자원했고 홀로 선발됐다. 몇 달 뒤 도씨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묻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하루 만에 떠났다. 그것이 가족이 본 도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수십 년 뒤, 도씨 막냇동생 도용영씨가 아버지로부터 ‘참전했다가 소식이 끊긴 누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도용영씨는 국군 정보사령부에 누나의 복무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고, 정보사는 도씨가 1951년 2월부터 11월까지 대북 첩보 부대에서 복무한 것을 확인했다. 도씨 동료 생존자들은 도씨와 함께 북한에 투입돼 국군 유격대와 연락하면서 적의 동태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증언했다. 정보사는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유족에게 ‘도씨가 1951년 말 전사했다’는 확인서를 보냈다. 도씨 시신을 찾지 못했으므로 정부는 국립대전현충원에 도씨 위패를 봉안했다.

문제는 도씨를 국군 특수임무수행자로 인정해 보상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국방부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지원단은 도씨 동료들이 미군 첩보부대로 파견됐다가 복귀한 뒤 해고된 기록이 확인된다며, 도씨가 전사했을 때 미군 소속이었던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픽=백형선

도씨는 1951년 말에 전사한 것이 아니었다. 1951년 11월 작전을 나갔다가 고립돼 본부와 통신이 끊어졌는데, 미군 극동사령부 소속 부대에 구출됐던 것이다. 그 뒤로 도씨는 미 극동사령부 첩보부대인 ‘호염부대’ 소속으로 복무했고, 1953년 7월 평안도 철산군 수운도(순도)에서 전사했다.

2012년 정부는 현행법상 도씨를 국군 전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대전현충원에 있던 도씨 위패를 철거했고, 정보사 충혼탑에 새겨져 있던 도씨 이름도 없앴다. 도용영씨는 “충혼탑에 가서 보니 누이 이름이 검은색 테이프로 덮여 있었다”고 했다. 도씨 여동생은 “한창 꿈많을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언니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가슴을 쳤다고 한다.

도씨 유족은 2023년 ‘누이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며 권익위에 민원을 신청했고, 권익위와 정보사, 국방부, 각 군 본부가 1년 넘게 협의한 끝에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현행 제도상 도씨를 국군 전사자로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도씨를 ‘유엔군 소속 비(非)군인 참전자’로 보고 군 본부의 전사 심의 절차를 거친다면 전사자로 인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권익위는 지난해 6월 공군본부에 ‘도씨의 전사 여부를 심의해 달라’는 의견을 냈고, 공군은 12월 24일 도씨를 전사자로 인정했다.

유철환 권익위원장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터에 뛰어든 호국 영웅 도종순님의 희생과 헌신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