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4일 국회에서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 소추해 직무를 정지시킨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전(前) 정부의 잘못에 대한 감사를 무력화하고, 현 정부·여당을 표적으로 하는 감사를 추진하기 위한 감사원 탈취”라는 말이 나온다. 감사 착수, 감사 보고서 공개 등과 관련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감사원장 자리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위원들이 ‘권한대행’이라는 이름으로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감사원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과정에 대한 감사를 시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 원장은 4일 “정치적 탄핵 추진”이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라, 재직 기간이 가장 긴 조은석·김인회 감사위원이 차례로 최 원장의 권한을 대행한다. 조 위원의 임기는 내년 1월 17일까지이고, 조 위원이 퇴임하면 임기가 내년 12월 5일까지인 김 위원이 권한대행직을 이어받는다. 두 사람 모두 문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문재인 정부 시절의 각종 의혹에 대한 감사에 부정적 견해를 보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때 서울고검장을 지낸 조 위원은 전현희(현 민주당 의원)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 보고서 심의 때 최재해 원장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노무현재단 운영위원으로 문 전 대통령과 함께 ‘검찰 개혁’을 주제로 하는 책을 출간했었다.
헌법과 감사원법에는 원장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를 따로 정하지 않아, 두 위원은 원장 권한을 무제한으로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원장은 인사권과 조직 개편 권한을 이용해, 특정 감사를 맡은 팀을 해체하거나 감사를 사실상 중단시킬 수 있다. 감사 보고서를 결재하지 않는 식으로 감사위원회의 심의·의결과 보고서 공개를 봉쇄할 수 있다. 감사팀이 발견한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를 수사기관에 요청하는 결재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나온 감사 보고서를 직권으로 재심의에 부쳐 ‘결론 뒤집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앞서 감사원이 한 감사 가운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의혹,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국가 통계 조작 의혹,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정식 배치 고의 지연 의혹, 북한 감시 초소(GP) 철수 부실 검증 의혹 감사 등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감사를 ‘표적 감사’로 지목했다. 조·김 위원 권한대행 체제의 감사원에선 이 가운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감사가 사실상 중단될 수 있다.
민주당은 최 원장 탄핵 소추에 앞서 지난 9월부터 이날까지 감사 요구안 5건을 국회에서 처리해 놓았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가 감사 요구안을 가결하면 감사원은 이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안에 그 사안에 대한 감사를 시행해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민주당이 미리 처리해 놓은 감사 요구안 대다수는 현 정부·여당을 겨냥한 것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2인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부당하고, 민주당의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따지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권 인사가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 서울시가 오세훈 시장 지시에 따라 ‘한강 리버 버스’ 사업자를 공모한 것, 민주당의 검사 탄핵 소추에 반발한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한 것 등을 감사하라는 요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