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인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방역본부)에서 일하는 A씨는 2020년 7월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법원은 A씨가 다른 사람의 주거에 침입해 성추행과 불법 촬영을 했다고 봤다.
그러나 방역본부는 A씨가 그동안 성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아 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수사 기관은 A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A씨는 법원 선고 전날부터 5일간 연차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휴가 기간이 지난 뒤엔 A씨 가족이 방역본부에 연락해 A씨 휴직을 대신 신청하려 했다. 방역본부는 A씨의 갑작스런 휴직 사유를 캐묻는 과정에서 A씨가 복역 중이라는 것을 알게 돼 A씨를 해임했다. A씨와 가족들이 복역 사실을 계속 숨겼다면 A씨는 방역본부 직원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공기관의 인사 관련 제도에 허점이 있어, 공공기관들이 애초에 임용해선 안 될 사람을 임직원으로 임용하거나, 범죄로 인해 퇴직돼야 할 사람을 계속 고용하고 일부는 승진까지 시키고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이 14일 공개한 ‘공공기관 임용·징계 제도 운영 실태 분석’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279곳은 모두 범죄 경력 등의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은 임직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273곳(97.8%)은 임용하려는 사람에게 실제로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탓에 결격 사유 존재 여부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항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76곳(27.2%)만이 경찰서에 신원 조사를 의뢰해 그 결과를 반영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다른 공공기관들은 임용 대상자가 범죄 이력 등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이를 걸러낼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 141곳(50.5%)은 임직원이 재직 중에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퇴직시킨다는 규정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직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엔 면직된다고 규정해놓고도,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을 때에는 그렇지 않다’는 단서를 달아 놓았다. 이에 따라 코레일은 2009년부터 최근까지 직원 8명이 폭행이나 음주운전 사망 사고 등으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는데도 이들을 퇴직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4명은 징계만 받았고, 다른 4명은 경고만 받고 직을 지켰다. 한전KPS는 성범죄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 퇴직시킨다는 규정을 갖추고 있지 않아,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직원에 대해 정직 3개월 징계만 내리고 말았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4곳은 인사 규정으로는 범죄자를 당연 퇴직시킨다고 했지만, 노조와 단체 협약을 통해 이 규정을 완화해놓았다. 이로 인해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직원이 군사 기밀을 유출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는데도 이 직원을 퇴직시키지 못하고 경고 조치만 하고 말았다.
감사원은 공공기관들이 중범죄를 저지른 임직원들을 퇴출시키고 싶어도 현 제도상으로는 공공기관들이 임직원들의 범죄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돼 있다고도 지적했다. 현행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임직원이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더라도 해당 기관으로 이 사실이 모두 통보되는 것은 아니다. ‘직무 관련 사건’에 관한 수사 결과만 통보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코레일의 차량 정비 담당 직원은 2021년 이후에만 필로폰·대마 소지와 투약으로 3차례에 걸쳐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해당 직원이 이를 코레일에 알리지 않았고, 수사 기관도 직무와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수사 결과를 통보해주지 않아, 코레일은 이 이 직원의 범죄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난해 3월 검찰 수사관이 이 직원의 근무지로 와서 긴급 체포를 한 뒤에야 코레일은 이 직원을 면직할 수 있었다.
한국동서발전 소속으로 발전소에 근무하던 한 직원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음주운전으로 4차례나 벌금형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회사는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이 직원은 2019년 5월 다섯 번째로 음주운전이 적발됐으나 이를 회사에 숨겼고, 그해 11월 법원의 형 선고 전날이 되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이 직원은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알지 못한 동서발전은 4개월 휴직을 내줬고, 이듬해 3월 휴직 연장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이 직원이 교도소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이 직원을 해임했다.
감사원은 공공기관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에 공공기관이 임용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범죄로 인해 퇴직돼야 할 임직원을 실제로 퇴직시킬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 공공기관 임직원이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경우, 직무와 무관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소속 기관으로 통보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