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가 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에 낮은 이자율로 대출해주는 사업에 허점이 있어, 은행들이 이 사업에 따른 대출에서 발생한 초과 수익 62억여원을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돈은 지자체가 가져갔어야 하는데, 일부 지자체가 은행에 중소기업 대출 업무를 맡기는 협약을 잘못 체결한 탓에 은행에 귀속됐다.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자치단체 중소기업 정책 자금 지원 사업 실효성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17개 시·도는 시중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에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장기간 빌려주는 ‘중소기업 육성 자금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17개 시·도와 은행들이 이 사업을 위해 설정한 자금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12조7917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7020억원은 지자체 보유 자금으로, 은행은 이 자금을 원천으로 하는 대출 업무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가져간다. 그러나 나머지 12조897억원은 은행 보유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이다. 은행이 이 자금을 시중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대출해주는 대신, 지자체는 은행이 덜 받은 이자만큼을 은행에 보전해 준다. 어느 쪽이건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중소기업에 이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익위가 확인해 보니, 일부 시·도는 은행 자금을 중소기업에 낮은 이자율로 대출해준 경우에는 은행이 덜 받은 이자만큼을 은행에 보전해 줬지만, 반대로 은행이 중소기업에 시중금리보다 높은 이자율로 대출해준 경우에는 은행이 더 받은 이자만큼을 은행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했다. 은행과 중소기업 육성 자금 지원 사업 협약을 체결할 때, 시중금리가 이 사업을 통한 대출 금리보다 낮아졌을 경우를 대비한 조항을 만들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중금리가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았던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2년 6개월간, 이보다 높은 이자율로 먼저 대출을 받았던 중소기업들이 시중금리에 따른 이자보다 더 낸 이자 62억2800만원을 은행들이 차지했다. 권익위는 “지자체들이 은행과 협약을 제대로 체결해 이 돈을 돌려받아 다른 중소기업 대출에 썼다면, 더 많은 중소기업이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익위는 각 시·도에 은행들과 체결한 협약에 이런 불합리한 내용이 있을 경우, 다시 협의해 협약을 고치라고 권고했다. 또 장기적으로는 은행 자금을 대출해주고 은행에 이자를 보전해주는 방식을 줄이고, 지자체 자체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권익위는 현재의 중소기업 육성 자금 지원 사업에 따른 대출에서도 중소기업 가운데 더 규모가 작은 기업, 청년 기업에 대해 더 높은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며, 영세 기업과 청년 기업에 대한 추가 지원 방안을 강구하라고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