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무기체계의 수출을 돕기 위해 방산 기업에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사업의 자금 일부가 외국 무기체계 관련 개발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국산 무기와 경쟁할 수 있는 외국 무기의 성능 향상에 쓰인 것이다.

감사원이 방위사업청을 정기감사해 24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청은 우리 군의 요구에 따라 개발된 무기체계를 외국 작전 환경에 맞게 개조하려는 방산 기업들에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535억여원을 지원했다. 국산 무기를 외국의 수요에도 부응할 수 있게 만들어 국산 무기 수출을 촉진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사청은 방산 기업들이 외국군 요구에 따라 무기체계 구성품을 개조하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개조된 구성품이 기존 무기체계와도 잘 통합되는지 시험해야 한다는 조항을 자금 지원 조건에 넣지 않았다. 그 결과, 109개 프로젝트 가운데 31개 프로젝트(28.4%)는 개조된 구성품이 기존 무기체계에 들어맞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런 프로젝트는) 개조 개발이 성공해도 현재로서는 기존 우리 무기체계와의 통합 여부를 알 수 없어, 무기체계를 체계 단위로 수출하기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프로젝트에 투입된 지원금은 522억여원(34.0%)에 달했다.

특히 4개 프로젝트는 국산 무기체계와는 무관하고 외국 무기체계를 위한 구성품 개조 프로젝트였는데도 38억원이 지원됐다. 튀르키예 지리트(CIRIT) 유도탄용 열전지 개발, 아랍에미리트 데저트스팅 유도탄용 열전지 개발, 인도군 보유 러시아산 T-90 전차용 보조 전원 공급 장치 개발, 이라크군 보유 미국산 Mk.19, Mk.47 고속 유탄 기관총용 조준 장비 개발 프로젝트 등이었다. 감사원은 방사청에 대해 “우리 무기체계의 수출 경쟁력 강화라는 사업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향후 세계 방산 시장에서 우리 무기체계와 경쟁하게 될 외국 무기체계의 성능 향상을 위해 정부 지원금을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감사원은 이런 결과가 방사청 특정 담당자의 비위로 인해 야기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방사청의 방산 기업 연구·개발 지원 사업 자체가 허술하게 설계돼 있어, 처음부터 외국산 무기체계의 성능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 프로젝트에도 돈이 흘러들어갈 수 있게 돼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방사청에 관련 제도를 개선하라고 통보했다.

한편 방사청 산하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는 2020년 유도탄에 탑재되는 대형 열전지를 개발하고 있었고, 개발이 끝나면 대형 열전지 제조 기술을 A 방산 기업에도 이전해 줄 예정이었다. 그러나 A 기업은 이 사실을 숨기고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에 대형 열전지 독자 개발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국과연도 대형 열전지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데도 기품원에 ‘중복되는 사업이 없다’고 거짓으로 답했다. 그 결과 A 기업에 개발비 13억원이 중복 지원됐다. A 기업은 또 2010년부터 국과연으로부터 열전지 설계·제조 기술을 이전받아 열전지를 생산·판매해 129억여원을 벌어들였으면서도 국과연에 기술료를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국과연에 담당자 2명을 징계하도록 하는 한편, A 기업으로부터 돈을 돌려받고 향후 A 기업의 연구·개발 프로젝트 참여를 제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