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일 오후 1시 19분, 인천대교 톨게이트를 지나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고속버스가 2차로에 정차해 있던 마티즈 승용차를 뒤에서 들이받고 오른쪽으로 튕겨져나갔다. 버스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뒤집힌 채 10여m 아래로 추락했고, 지면에 천장부터 부딪히면서 차체가 승객들의 머리를 덮쳤다. 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0명이 크게 다쳤다.

2010년 7월 3일 인천대교 연결로에서 도로를 벗어나 추락한 버스를 수습하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DB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은 차가 고장이 났다는 이유로 차를 도로 한복판에 세워둔 마티즈 운전자, 그리고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은 버스 기사에게 있었다. 그러나 피해를 키운 것은 가드레일의 성능 부족이었다. 가드레일이 버스 추락을 막았다면 이 사고는 ‘인천대교 연결로 버스 추락 참사’로 기억될 만큼 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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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이듬해 감사에서 가드레일 성능 기준이 부실하게 설정돼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기준을 충족한 가드레일이라도 차량이 도로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막아주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2012~2013년 가드레일 성능 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 강화된 기준은 그 뒤로 10년이 지나도록 실제 가드레일 납품과 설치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안전 기준 강화는 서류상으로만 이뤄졌던 것이다. 전국 도로 곳곳에는 인천대교 참사와 같은 사고가 다시 벌어질 수도 있게 하는 부실 가드레일들이 그대로 설치돼 있다.

감사원이 13일 공개한 ‘방호울타리 성능 및 안전 관리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는 2012년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을 개정해 가드레일의 성능 기준을 강화했다. 2013년에는 ‘차량방호안전시설 실물충돌시험 업무편람’을 개정해, 새로운 성능 기준대로 가드레일이 만들어졌는지를 시험하는 방법을 규정했다. 시험 차량 측면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을 때 가드레일이 밀려나는 정도가 1m 이하여야 하고, 차량의 무게중심이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던 선 바깥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차량은 도로 쪽으로 다시 밀려나야 하고, 이때 차체가 탑승자를 다치게 할 정도로 크게 변형돼 있어서는 안 된다. 국토부는 가드레일 제조 업체들이 이런 새 기준에 맞출 수 있게 유예 기간을 주도록 내부적으로 정해놓고, 새 기준은 2016년 1월 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되지 않았다. 국토부가 개정 지침에 ‘이미 시행 중인 건설공사 등은 종전 물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6년 이후에도 과거의 성능 기준에만 맞춘 가드레일이 계속 공급됐다. 2016년 1월 1일부터 올해 2월 13일까지 7년여간 전국 도로 건설 현장에 공급된 가드레일 1조1484억원어치 가운데 2367억원어치(20.5%)는 새로운 성능 기준을 충족하는지 알 수 없는 구형 가드레일이었다.

인천대교 참사에 대한 조사에서는 가드레일이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설치돼 있었다는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됐었다. 흙을 쌓아올리고 다지는 ‘성토’를 한 뒤 그 위에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러다보니 가드레일이 땅을 돋운 부분 끄트머리에 설치됐고 사고 버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자 충격을 버텨내지 못했던 것이다.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막대를 꽂아놓고 비탈 쪽으로 밀면 쉽게 쓰러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존 성능 기준을 통과한 가드레일이라도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설치해놓으면 충격을 버텨내는 능력이 평지에 설치됐을 때의 61.4%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7월 6일 인천대교 연결로 버스 추락 참사 현장에서 경찰과 국토해양부,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들이 가드레일을 조사하고 있는 모습. 이 가드레일은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설치돼 있었고 성능이 부족해 버스가 도로를 벗어나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DB

이에 따라 국토부는 2012년 가드레일 성능 기준을 강화하면서, 가드레일을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설치하는 경우에는 이런 장소에서도 평지에 설치됐을 경우에 비해 90% 이상의 성능을 내는 제품을 써야 한다고 규정했다. 2014년에는 전국 국도 중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는 구간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성능을 다시 시험하도록 하고, 성능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경우에는 가드레일 버팀목을 보강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기준도 도로 신설 현장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감사원이 최근 5년(2018~2022년)간 공공기관이 가드레일을 사들여 도로에 설치한 4419건 중 92건을 선정해 조사해보니, 19건에서는 비탈에 가드레일을 설치하면서 평지용 가드레일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당자들은 ‘바뀐 기준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를 댔다. 감사원은 “이런 구간에 차량 충돌사고가 발생 시 수평 저지력 부족으로 추락 위험이 증가하는 등 도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비탈에 평지용 가드레일을 쓴 구간은 19곳에서만 총 14km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개통된 국도 32호선 대전 학봉~공주 공암 구간과 전남 보성~겸백 지방도는 비탈이 시작되는 지점에 설치된 가드레일들이 성능 시험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12월 개통된 전남 거창 군도 4호선 병곡~산수 구간은 서류상으로도 새 성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가드레일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6곳에 설치된 평지용 가드레일들은 아예 현장 성능 시험을 받지 않았다. 이 외에도 전국 도로에 성능 미달 가드레일들이 얼마나 더 설치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국 도로 중 국토부가 직접 관리하는 고속도로와 국도에 대해서는 각 현장에서 성능 시험을 해 기준에 미달하는 가드레일에 대해서는 보강을 추진하고, 기타 도로에 대해서는 이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에 알려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