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5명이 숨지고 41명이 다친 경기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방음터널이 수도권에 47곳 이상 있는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방음터널 내에서 불이 나면 삽시간에 크게 번질 수 있는데, 국토교통부가 방음판을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을 갖춰놓지 않아 화재에 취약한 방음터널이 수도권 곳곳에 설치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 실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토부는 2016년 8월 국토부 예규인 ‘도로방재지침’을 개정하면서 방음터널(터널형 방음시설)이나 차도와 인도를 분리하는 방음벽(보·차도 분리 방음벽)도 일반 터널과 같은 수준의 방재 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도로 터널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 지침을 개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방음터널·방음벽에 일반 터널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 문제였다. 방음터널·방음벽에 많이 쓰이는 방음판의 재질에 관한 규정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방음터널·방음벽에는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나 폴리카보네이트(PC) 같이 불에 잘 타는 플라스틱 재질로 된 방음판이 널리 쓰이고 있다. 또 방음판을 지탱하는 창틀 역할의 구조체로는 H형강(단면이 로마자 ‘H’ 모양인 강철)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재질로 된 방음판이 설치된 방음터널 안에서 차량에 불이 나 방음판으로 옮겨붙으면, 차량이 타면서 나는 열에 방음판이 타면서 나는 열이 더해지면서 일반 터널에서 난 화재에 비해 더 큰 피해가 날 수 있다. 또 H형강 구조체가 고열에 휘어지면서 방음판이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해 터널형 방음시설 내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도로 이용자들이 터널 외부로 안전하게 대피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대피 시간 등을 확보하기 어렵고, 인근 지역으로 화재가 확산돼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이 수도권에 설치된 방음터널 50곳과 보·차도 분리 방음벽 23곳을 점검한 결과, 방음터널 39곳과 보·차도 분리 방음벽 8곳이 불에 잘 타는 재질의 방음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접합유리를 사용한 방음터널과 방음벽은 각각 7곳, 15곳이었다. 또 방음터널 48곳, 보·차도 분리 방음벽 18곳이 콘크리트가 아닌 H형강 등 강철 재질의 구조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감사원은 2021년부터 국토부 산하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고 국토부에 2021년 말 방음터널 화재 시의 위험성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방음터널의 안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곧바로 취하지 않았고, 지난해 7월에야 방음터널 화재 안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외부 기관에 맡겼다.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 사고 전까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