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10일 MBC에서 열린 대선후보 TV합동토론에 참석한 이회창 한나라당, 노무현 민주당, 권영길 민노당 후보(왼쪽부터)가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기 앞서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TV 토론회를 본 네티즌들이 23년 전 대선 토론회 영상을 소환하며 “이때가 그립다”는 반응을 보였다.

유튜브에 올라온 ‘지금과 달랐던 품격 있는 토론’이라는 제목의 1분짜리 쇼츠 영상은 2일 기준 조회 수 1211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 영상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출연한 토론회 영상을 짧게 편집한 것이다.

당시 두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을 주제로 주장과 반박, 재반박을 하며 서로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 후보는 “느닷없이 수도 옮긴다는 이유로 6조원을 쓰면서 분란을 일으킬 게 아니라 서민 교육을 위해 투자할 의향은 없으신지요?”라고 물었다. 이에 노 후보는 “수도권 과밀로 인해 매년 10조원이 넘는 교통 혼잡 분담금이 생기고, 8조원이 넘는 환경 공해 비용이 생기고, 분당에서 빠져나오는 데 30분이 걸린다. 서민들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을 해결하는 데 6조원이 그렇게 비싸다는 얘기신지요?”라고 반박했다.

이 후보는 “지금 수도권의 교통문제는 교통문제로서 처리해야 한다”며 “대전으로 옮겨서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자 그러면 대전에 그 번잡한 교통문제가 다시 옮겨간다. 서울을 공동화시켜서 죽여가면서 교통문제를 해결하자 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작은 결점을 고치려다 오히려 큰 것을 망치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라고 맞받았다.

노 후보는 “충청권에 10년쯤 걸려서 (인구) 50만 정도 되는 작은 행정수도가 건설된다고 해서 거기에 무슨 교통 혼잡이 옮겨간다는 말씀이신지, 그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상대에 대한 비방이 아닌 정책을 두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현재와 대조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회창 의견이 맞네, 노무현 의견이 맞네 문제가 아니라 저런 게 건설적인 토론이다. 차분하고 서로 의견에 일리가 있다”는 댓글에는 4만5000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동의를 표했다.

“진심 내가 원하는 정치인 토론이 이런 느낌이다” “진짜 이런 토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에휴…” 등의 댓글에도 2만개 넘는 ‘좋아요’가 눌렸다.

이 밖에도 “이거 보는데 눈물이 난다. 저때만 해도 모두가 나름의 정의가 있었고, 그 바탕에는 적어도 애국심이 있었고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었다” “이건 진보 보수를 떠나 훌륭한 토론이다. 정답이 있다기보다 양측 모두 일리 있는 말로 토론하니 얼마나 보기 좋은가”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왼쪽부터)가 2002년 12월 10일 MBC에서 열린 경제분야 TV합동토론을 준비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이 방송 토론회를 쪼갠 다른 쇼츠도 높은 조회 수를 보이고 있다. 연금 개혁에 대한 토론이 담긴 쇼츠는 약 205만회, 시장 개방에 대한 여야의 초당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 후보의 주장에 노 후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약 85만회를 기록 중이다.

이번 대선은 토론이 가장 적었던 선거로 꼽힌다. 주요 후보 2명 이상이 등장한 토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토론 세 번에 그쳤다.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등록 다음 날부터 사전투표일 전날까지 대선 후보 토론회가 3회 이상 필수로 열려야 하는데, 최저 하한선만 지킨 셈이다.

내용 면에서도 정책에 대한 논의보다는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 주를 이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고발도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열린 마지막 TV 토론에서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은 “허위 사실을 악의적으로 공표했다”며 경찰에 고발했고, 개혁신당은 “이재명 후보 장남에 대해 했던 발언들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며 민주당 등을 무고 혐의로 맞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