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침체를 넘어 불황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면서 21대 대선 후보들은 경제 공약의 초점을 ‘비상 대응’에 맞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취임 1호 지시로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겠다고 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비상 경제 워룸(War room)’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집권 초반엔 사회 개혁 이슈보다 경기 침체 대응과 극복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두 후보는 재정을 풀어 경기 침체 가속화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29일 서울 신촌 유세에서 “(차기 대통령의) 가장 우선순위는 민생을 회복하는 것이며, 빈사(瀕死) 상태인 내수 경제를 신속히 진작해야 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그러면서 “민주당이 연초에 주장한 추가경정예산안 규모가 30조원 정도였다”며 “추경 내역 중에는 내수 진작을 위한 재정 지출이 가장 클 것”이라고 했다. 재정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문수 후보 역시 “취임 당일 30조원의 민생 추경 편성에 나서겠다”고 했다. 여야는 지난 1일 민생 지원과 영남 지역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13조8000억원 규모 추경안을 처리했다. 그런데 이와 별도의 추경을 또 편성해 경기 침체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때 추경 편성에 부정적이었지만, 대선 캠페인 과정에선 경기 침체 악화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류가 변했다.
이·김 후보는 취임 시 경제 비상 대응 기구 설치도 공약했다. 이 후보는 지난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제가 만약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된다면 가장 먼저 대통령이 지휘하는 ‘비상 경제 대응 TF’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그러면서 “사법·검찰 개혁 등도 중요하지만 조기에 (이런 사안에) 주력해 힘을 뺄 상황은 아니다”라며 “집권 초 민생 회복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갈등적 요소가 적은, 시급한 국민들의 민생과 관련된 것에 우선 집중하겠다”며 “사법 개혁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김 후보도 “우리 경제가 촌각을 다툴 정도로 어려운 만큼 장관이 임명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며 비상 경제 워룸 설치를 공약했다. 그는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경제팀을 조속히 가동하고 여기에 기업인과 소상공인도 꼭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두 후보는 한국 경제의 장기 성장 전략으로도 AI(인공지능) 산업을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AI 3강,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 달성을 장기 목표로 내세웠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는 “인위적 경기 부양이나 모방을 통한 가짜 성장이 아니라, 체질 개선을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지속적 성장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대규모 국민 펀드를 조성해 AI 산업에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도 미래 산업의 핵심인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원자력을 중심으로 하는 ‘정직한 에너지 믹스’를 강조하는 건 이 후보와 차이가 있다. 김 후보는 지난달 에너지 공약을 발표하며 “원전 정책이 정치 권력의 선호에 따라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기업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는 이 후보는 별다른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김 후보는 지난 19일 경제 공약을 발표하며 법인세와 상속세를 낮추고, 규제 혁파를 전담하는 ‘규제 혁신처’를 신설하고, 노동 부문에서도 반도체 등 분야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