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상임총괄선거대책위원장(왼쪽 두번째)이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를 개의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6일 ‘대법관 100명 확대’ 및 ‘비(非)법조인 대법관 임용’ 법안을 철회했다. 이재명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판결을 한 이후 발의된 이 법안들에 대해 ‘사법부 장악’ 시도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발 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민주당은 ‘대법관 30명 증원’ 법안은 철회하지 않았고, 이 후보도 이날 “법원 내에서도 증원 논의가 많다”며 향후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날 대법원의 이 후보 사건 판결을 계기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는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안건에 대한 표결을 하지 않고, 대선 이후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이날 “박범계 의원이 제출한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법안, 장경태 의원이 제출한 대법관 100명 확대 법안을 철회하기로 결정하고 해당 의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선대위가 헌법기관인 개별 의원들에게 발의된 법안 철회를 지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당내에서도 대선 막판에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민주주의의 뼈대인 ‘삼권분립’을 훼손·부정한다는 이미지가 부각될 경우, 중도·무당층 표심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컸다는 것이다.

장경태 의원이 지난 8일 낸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기존 14명인 대법관에 86명을 더해 대법관 정원을 총 100명으로 만드는 내용이다. 박범계 의원이 지난 23일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학식·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하며 법률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도 대법관이 될 수 있게 돼 있다. 이와 관련해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민주당 어용 재판소 만들겠다는 의도” “김어준·유시민도 대법관 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이 법안들은 대법원이 이 후보 유죄 취지 판결을 내린 이후 발의돼 사법부에 대한 보복 성격도 컸다.

◇당내 “삼권분립 훼손 이미지가 부각되면 중도층 표심 악영향”

이와 관련, 장경태 의원은 “선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헌법상 대법관에 대한 임명 제청권이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공세라는 말은 심히 유감”이라고 했다. 박범계 의원은 따로 입장을 내진 않았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선대위의 법안 철회 지시에 대해 “내가 지시한 적이 없다”며 “내가 (권한을) 위임해놨으니 선대위가 (지시) 할 수는 있는데, 나는 아직 보고받지 못했다”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자신은 사법부 장악 시도와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 선대위는 김용민 의원이 지난 2일 발의한 ‘대법관 30명으로 증원’ 법안은 철회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 이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도 이날 “대법원이 워낙 사건은 많고 다른 나라에 비해 대법관 숫자가 적다”며 “민사사건의 70%가 기록도 보지 않고 심리 불속행으로 아예 상고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민생 대책이 급선무” “지금은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대법관 증원 필요성은 확실히 밝힌 것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민주당의 법안 철회와 관련해 “법안의 발상 자체가 정말 방탄·독재적이다. 삼권분립을 완전히 무시한 그런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후보가 말 바꾸기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대선에서 이기면 또다시 (사법부 장악을) 시도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한 법조인은 “이 후보와 민주당이 사법부 장악을 시도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이재명 면소(免訴)법’이라 불리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도 모두 철회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진심이라고 믿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