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중국 제조 2025’란 산업 고도화 전략을 통해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으로 올라섰지만 한국 제조업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오늘의 삼성전자, 현대차그룹을 만든 1970년대 장기 성장 전략은 사라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류 영합적인 제조업 정책만 되풀이된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이번 6·3 대선 주요 후보들도 최근 화두로 떠오른 AI(인공지능) 성장 방안을 발표했지만 제조업과 관련해서는 ‘AI와 접목한다’ 같은 모호한 공약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성장 전략은 AI에 치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대선 10대 공약에 제조업과 직접 관련된 공약은 거의 담지 않았다. 10대 공약 중 ‘실용적인 외교 강국’이란 항목에 “주력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 산업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도입” 정도가 제조업과 직접 관련된 공약이다. 전략 산업 국내 생산 촉진 세제는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다만 감면받을 세금이 없으면 혜택이 없는 셈이라 보조금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보조금 법률을 제정해 시설 투자의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후보나 민주당이 개별적으로 발표한 제조업 공약도 ‘제조 데이터 기반 맞춤형 AI 제조 혁신 추진’ 등 사실상 AI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 대부분이다. 세부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민주당은 또 ‘울산 완성차 기업·부품 업체 미래차 전환’ ‘경남 고부가가치 선박 경쟁력 강화’ 같은 공약도 내놨다. 다만 산업 정책이라기보다는 지역 발전 공약 성격이 강한 것들이어서 본격적인 제조업 정책으로 보기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후보 캠프 내부에선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 지구)’가 된 남해안 공업단지 구조 조정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 공약으로 발표된 것들은 없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세부 공약으론 규제 혁파, 유연 근로 요건 완화, 상속세·법인세 인하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김 후보도 중국에 추격 또는 추월당한 전통 제조업 분야 경쟁력 강화 방안은 구체적인 걸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후보 경제 공약 가운데 대통령이 정례적으로 주재하는 ‘대한민국 3+1(AI, 바이오, 양자+우주) 위원회’에 제조업 분야는 포함되지 않았다.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의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 옥죄는 공약도
이재명 후보는 노조의 불법 쟁의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는 지난 2월 조선 업계와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한화오션 측에 “손배소 취하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는 민주당 노동존중실천단과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주도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회의 협상 창구인 ‘사회적 대화 기구’도 마련했다. 이 후보는 또 단계적으로 주 4.5일제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이럴 경우 ‘임금 감소 없는 주4.5일제’라 기업들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김문수 후보는 이 후보와 비교할 때 기업 지원 방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법인세·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R&D(연구·개발) 분야 국가 예산 5% 지출, 산업용 전기료 인하 등을 공약했다. 다만 중국의 급성장으로 격변기에 돌입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 등 맞춤형 공약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법인세 인하 등은 법률 개정이 필요한데, 국민의힘 의석(107석)으로만은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 때도 규제 혁파를 추진했지만 법률 개정이 어려워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리쇼어링(해외 공장 국내 복귀) 정책으로 제조업 부흥에 나서겠다”고 공약했다. 중국, 베트남 등 해외로 나간 기업이 국내로 돌아올 경우 외국인 노동자에게 현지 기준에 맞게 최대 10년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구상이다. 산단 특수 비자(E-9-11) 신설로 일정 기간 최저임금 적용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