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주(69)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은 21일 본지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떨어지는 칼날 같은 상황이라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불황과의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1등 기업’을 키우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그대로 끝난다”고 했다. 경제의 기초 체력인 잠재성장률이 0% 수준으로 내려오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이 후보가 대통령이 돼도 경제가 바로 좋아지지 않는다. 내년까지도 불황은 이어질 것”이라며 “적어도 떨어지지 않도록 버티고, 추세를 바꾸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했다.
이 본부장은 1986년 경기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사법시험 준비생인 이 후보를 처음 만났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이 된 이후엔 ‘3대 무상 복지(무상 교복·청년 배당·산후조리원)’를 설계하는 등 정책 조언자 역할을 해왔다. 이 본부장은 “이 후보는 현실의 작은 문제에서 출발해 결론에 도달하지 사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이 후보의 ‘기본사회’ 구상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국민에게) 돈을 주는 것보다 민생 회복과 성장 잠재력 확보가 더 시급하다”며 “기본사회가 이 후보의 최우선 과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옛날에 뽕짝 좋아했다고 계속 뽕짝만 좋아해야 하느냐”며 “정부 지출 규모도 급격히 늘리지 않겠다”고 했다.
-한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1분기 마이너스 성장(-0.25%)을 했다. 2분기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관세 전쟁 후유증은 3~4분기에 집중 반영될 거다. 따라서 내년에도 나아지지 않을 거다. 2분기 연속으로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침체’라고 하고, 1년 넘게 경기가 안 좋으면 ‘불황’이라고 한다. 이제 불황에 들어가는 국면이다.”
-이 후보가 집권해도 경제가 당장 좋아지기는 어렵단 얘기인가.
“지금 한국 경제는 시름시름 아픈 상태다.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졌다. 과거엔 한국 경제가 1등을 노리지 않더라도 3·4등 하면서 ‘가성비 좋게 살자’ 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가 어렵다. 기술 주도형 성장을 이뤄내지 않으면 성장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석유화학·철강·조선은 이제 1등을 놓쳤다. 이 산업들이 몰린 남해안 쪽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가 돼 버렸다. 다시 앞서갈 수 있게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산업 구조를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한국의 20대 기업은 2000년대 이후 하나도 안 바뀌었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순위가 다 바뀌었다. 엑손모빌이 1등인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가. 듣도 보도 못 한 엔비디아가 올라오지 않나. 미국은 산업 생태계에서 혁신이 일어났다. 한국도 재벌 1세대들은 스토리가 있고 모험이 있었다. 그런데 2세대 이후로는 상속세만 걱정한다. 그럴 게 아니라 사업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혁신 경쟁을 벌일 이들도 계속 나타나야 한다. 기회가 들끓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재계에선 이 후보가 집권하면 기업 하기 어려울 거란 우려도 나오는데.
“이 후보가 추구하는 기술 주도 성장, 사업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겠다는 것 어디에 반(反)기업이 있나.”
-이 후보 정책 순위 중 기본사회가 우선 아니었나.
“옛날에 뽕짝을 좋아했다고 계속 뽕짝을 좋아해야 하나. (국민에게) 돈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민주주의와 민생을 회복하고 성장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후보가 기본사회를 내건 이유는 뭔가.
“기본사회는 헌법 10조(행복 추구권)에서 도출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인권과 관련돼 있다. 무엇을 줄 때 가난하다는 ‘낙인’을 찍으며 줘서는 안 된다. ‘가장 공손한 방식’으로 줘야 한다. 이게 이 후보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다.”
-기본사회를 후순위로 미룬 건 재정 문제 때문인가.
“재원 마련이 곤란하긴 하다. 경기가 안 좋아 세수(稅收)가 좋지 않다. 장기채 위주로 어느 정도 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지출 규모를 확 늘리는 건 위험하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를 일부 되돌려 세수를 늘릴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실물 경제에) 충격이 오기 때문에 쉽지 않다.”
-부동산 정책 방향은 뭔가.
“1주택자가 비싼 집 사는 걸 뭐라 할 수 있나. 한국 사회가 정한 규칙대로 세금만 내면 된다. 일부 투기꾼이 문제다. 일각에선 고가 주택이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식의 접근은 맞다고 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때와 다른 접근을 하겠다는 뜻인가.
“문재인 정부는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택 공급 확대를 금기시했던 것 같다. 주택 공급을 억제하는 건 시장을 억압하는 것이다. 공급이 없을 것이란 신호를 시장에 줘 ‘가수요(假需要)’를 일으켜 결국 부동산 시장이 폭발했다. 수요층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약자에게는 공공 임대를 최대한 제공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 살도록 하면 안 되고 ‘소셜믹스’가 돼야 한다. 신혼부부는 ‘분양 임대’가 필요하다. 평생 공공 임대로 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집값이 올라갈 때 소외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런 이야기를 안 했다.”
-이 후보는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갖는 데 부정적인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이상했으니 기재부 공무원들이 휘청한 것이라고 본다. 다만 기재부의 세수 추계가 수년 연속 틀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재정에 구멍이 난다. 예산을 다루는 부서를 별도로 만들어 잘못하면 회초리 맞는다는 걸 알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기재부는 너무 규모가 커서 (기능을) 정리할 필요도 있다.”
-이 후보가 ‘호텔 경제학’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는 뭔가.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든 것일 뿐이다. 케인스도 ‘돈을 몰래 파묻어 놓고 소문을 내라. 그러면 그 돈을 찾기 위해 삽을 사고, 탐지기 사면서 돈을 쓴다. 그 소문만으로도 경제가 좋아진다’고 얘기한다. 케인스가 실제로 땅 파고 돈을 묻어 놨겠나.”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어떤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가.
“퇴임할 때 50% 지지도를 유지했으면 한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극도로 분열돼 있다. 국민을 통합한 대통령으로 퇴임했으면 좋겠다. 정치·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한국이 진짜 선진국이라는 느낌을 국민에게 주고 퇴임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이한주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 서울대 식물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경원대(현 가천대)에서 강사를 하다가 경기 성남 지역에서 시민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 1986년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이재명 후보를 만났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을 할 때 ‘3대 무상 복지(무상 교복, 청년 배당, 산후조리원)’ 정책을 설계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 후보 캠프 정책위원장을 맡았고, 이 후보가 민주당 대표를 맡고 나서는 당 산하 민주연구원장에 임명됐다. 이번 대선에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