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노동’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다. 소년공 출신 노동자(이재명), 급진적 노동운동가(김문수)라는 배경은 두 인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뼈대이지만, 현재 둘의 노동관은 크게 다르다.
소년공 시절 프레스에 찍혀 왼팔이 굽어졌다는 이재명 후보는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근로 감독 강화 등 노동계의 요구를 대폭 반영한 대선 공약을 채택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대선 공약에는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실현’을 담았다. 플랫폼 경제가 도래하면서 나타난 배달 라이더 같은 ‘비전형 근로자’에게도 일종의 최저 임금인 ‘최저 보수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급진적 노동운동가였다가 전향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에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된 김문수 후보는 제1호 공약으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와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다. 노동 현안과 관련해서는 ‘기업 자율 보장’을 강조했다. 김 후보는 “저 자신도 노조, 제 아내도 노조, 우리 형님도 노조 출신이지만,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기업이 없으면 노조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노란봉투법 등 노조 관련
이 후보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를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를 하청 노동자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 업체로 확대하고(2조), 노조의 불법 쟁의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3조)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윤석열 정부의 재의 요구권(거부권)에 의해 두 차례 폐기된 바 있다. 이재명 후보는 18일 TV 토론에서 “노란봉투법은 대법원 판례가 이미 인정하는 법안이며 당연히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김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은 헌법에도 안 맞고, 민법에도 안 맞는다”며 “쟁의 요구가 계속 벌어질 수 있다”고 반대했다. 불법행위에 가담한 이들에게 각각의 귀책 사유나 기여도를 따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또 법이 통과되면 대기업은 수많은 하청 업체의 쟁의도 상대해야 하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통과 시 국내총생산(GDP)이 10조원가량 손실된다.
◇근로시간
이 후보는 “주 4.5일제를 도입해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노동시간을 감축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주 5일(하루 8시간) 40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36시간으로 줄여 주 4일은 8시간씩 일하고 금요일 등 하루는 4시간만 일하는 구조다. 또 포괄 임금제를 장시간 노동의 주범으로 보고 근로기준법에 이를 금지하는 규정을 명문화하겠다고 했다. 포괄 임금제는 시간 외 근로 수당을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급여에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인데, 실제 일한 시간보다 급여를 적게 주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게 민주당의 시각이다.
김 후보는 ‘기업의 자율에 따른 4.5일제’ 도입을 주장한다. 현행 법정 근로시간은 유지한 채 근무 일정만 조정하는 방안에 가깝다. 예를 들어, 월~목요일에 하루 8시간 기본 근무에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은 4시간 근무만 하는 방식이다. 또 민주당의 주장처럼 ‘덜 일하고 임금은 똑같이 받는’ 방식은 반대한다. 이는 기업에 일방적으로 손해 볼 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근로자가 원하는 만큼 집중해서 일하고 쉴 수 있도록 주 52시간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는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방안도 제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근로 감독
이 후보는 “지방 공무원에게 노동 관련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을 부여하고, 부족한 근로 감독 인력을 대폭 증원하자”는 입장이다. 근로 감독관은 현재 2100명가량으로 이 후보는 과거 성남시장 시절부터 “근로 감독관이 1만명은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 사건을 전담하는 노동 법원 설립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상황에서 근로 감독관을 급격히 늘리고, 노동 법원까지 만들면 산업 현장에 영향이 불가피하다.
김 후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소규모 중소기업까지 적용하는 게 맞느냐”며 “사장이나 회장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조건 책임을 지워서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구속한다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김 후보는 고용부 장관 때부터 추진하던 ‘임금 체불 기업 엄벌’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 등은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어떻게
이 후보는 “특수 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등 고용 형태나 계약 명칭과 무관하게 일하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사용자와 근로계약서를 쓰는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다. 이 후보의 방침은 이들에게 근로자처럼 ‘단체교섭권’ 등을 주는 한편 고용·산재 보험 등 사회보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근로자는 고용주가 고용·산재 보험료 절반을 내는데, 개인 사업자들인 이들의 보험료 일부를 누가 부담할지 등의 문제가 있다.
특히 이 후보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정도 보수는 받아야 한다’는 최저 보수제 관련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자영업자인 이들에게 일종의 최저 임금제 같은 정책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배달 라이더 등의 권익을 더 두껍게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들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 최저 임금을 주는 데는 반대한다. 그가 작년 고용부 장관 때 추진한 ‘노동 약자 보호법’은 프리랜서 등이 계약을 맺을 때 활용할 수 있는 표준 계약서를 제정하고, 국가나 공공기관이 당사자로 프리랜서 같은 노동 약자와 계약 시 서면 체결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또 프리랜서들이 결제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일을 맡긴 의뢰인이 사전에 공신력 있는 플랫폼 등에 대금을 예치하고, 거래 완료 후 프리랜서에게 전달하게 하는 ‘에스크로 시스템’ 도입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