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18 민주화운동 45주년 하루 전인 17일 광주를 방문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8시30분쯤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5·18 민주묘지를 찾았다. 김 후보는 방명록에 “오월 광주 피로 쓴 민주주의”라고 썼다.
묘역으로 이동한 김 후보는 5·18 민주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고(故) 윤상원 열사의 비석 앞에서 묵념했다. 옆에 앉아 비석을 쓰다듬기도 했다. 또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고 박관현 열사의 묘 앞에서 묵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열사는 1982년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았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50일간 단식투쟁을 하다 사망했다.
김 후보는 “제가 박 열사 방에서 수감 생활했다. 박 열사가 사망한 뒤 제가 들어가서 1년 동안 생활했다”며 “(박 열사가) 교도소에서 계속 단식하다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박 열사) 누님이 살아계신데 누님이 매년 오신다. 너무나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1986년 직선제 개헌 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뒤, 서울구치소·안양교도소 등을 거쳐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이후 1988년 개천절 특사로 출소했다.
이번 참배에는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박대출 사무총장, 이정현·양향자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인요한 호남특별위원장 등이 함께 했다.
김 후보 방문에 항의하는 광주지역단체들의 시위도 있었다. 광주전남촛불행동 소속 회원들은 묘지 정문 앞에서 “내란세력은 지금 당장 광주를 떠나라” 등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그러나 김 후보의 입장을 막진 않았다.
◇1980년대 수감됐던 광주교도소 터 찾아
김 후보는 곧이어 옛 광주교도소 터도 방문했다. 그는 박 열사와 인연을 소개하며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고 광주교도소에서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이들도 만났다. 그는 “제가 목포에서 광주로 이감 돼서 오니까 교도관이 독방에 집어넣으면서 하는 얘기가 ‘여기가 박관현이 죽어 나간 데니까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라’였다”며 “박 열사가 사망한 뒤 만난 인연”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매년 박관현 묘소는 꼭 참배한다”고 했다.
김 후보는 “5월 정신은 남을 미워하거나 누구를 공격하는 수단이 아니다”며 “정말 희생 위에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서 있다.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피 흘리고 고통 받는 많은 희생 위에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어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아까 저 보고 고함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오월의 아픔을 알겠나.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인권을 향상시키는 아픔이라고 생각하고 정진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 “독재 정치 안된다는 것이 5·18 명령"
김 후보는 이어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광주·전북·전남 현장회의도 참석했다.
김 후보는 회의에서 “우리가 하나가 돼야 한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겨냥해 “부패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독재를 하는 정치는 절대 안 된다는 명령이 바로 광주 5·18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이번 선거는 단순하게 어떤 정당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느냐 아니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해괴망측한 독재로 전락하느냐”라며 “(이 후보가 대권을 잡으면) 입법 독재를 넘어서 행정부의 독재, 대법원장부터 어느 법관이 마음 놓고 양심적인 재판을 할 수 있겠나. 과연 범죄자를 수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