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35) 신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당과 대선 승리를 위해 결단해줄 것을 요청하겠다”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탈당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국민의힘 차원에서 윤 전 대통령과 관계를 정리하고 6·3 대선을 치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측은 “당적 정리 문제는 김문수 후보에게 맡기겠다. 김 후보가 결단을 내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탈당 여부는 윤 전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윤 전 대통령 당적 정리 문제는 김 후보의 결정에 달렸다”는 말이 나왔다.

김용태 신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국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기 위해 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가운데 사진). 김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탈당을 권고하겠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적 문제는 김문수 후보에게 맡기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오른쪽 사진). 김 후보는 그러나 "탈당 여부는 윤 전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왼쪽 사진). 윤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사건 3차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김 후보 사진은 이날 서울 신도림역에서 출근길 유세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사진공동취재단

김 위원장은 이날 국민의힘 전국위원회 의결을 거쳐 취임한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윤 전 대통령을 찾아뵙고 비대위원장으로서 정중하게 탈당을 권고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안을 수용하는 것과 상관없이 당은 또 다른 절차를 고민하겠다”며 “대법원에서 유죄 판단을 받거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당원은 당적을 3년 정도 제한하는 방안을 당헌·당규에 제도화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본지에 국민의힘에서 제기되는 탈당 요구와 관련해 “모든 것을 김 후보에게 맡기겠다는 게 윤 전 대통령 생각”이라며 “윤 전 대통령은 김 후보의 대선 승리에 필요하다면 나를 밟고 가도 좋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윤 전 대통령의 탈당 문제는 윤 전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라며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전직 대통령에게) 탈당하라, 말라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탈당 결정 떠넘기는 尹… 보수 결집 급한 김문수의 딜레마

국민의힘 김용태(경기 포천·가평) 의원은 15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일성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이 “김문수 후보가 결단을 내려 달라”고 하면서 공은 김 후보에게 넘어간 모양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김 후보의 ‘결단’을 언급한 것은, 김 위원장이 아니라 김 후보가 직접 탈당을 요청하면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 김 후보 의중을 최종 확인하고 당적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뜻 같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 측 관계자들은 그가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탈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윤 전 대통령은 “나는 김 후보 다음으로 김 후보의 대선 승리를 갈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그의 참모들은 전했다. 윤·김 두 사람은 지난 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김 후보가 선출된 직후 한 차례 통화했다고 윤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전했다. 당시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은 ‘선거를 직접 지휘하는 후보가 결단을 내려 달라. 모든 것을 김 후보에게 맡기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백형선

그런데도 김 후보가 윤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지 않자 국민의힘에선 김 후보가 딜레마에 처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이후 국민의힘에서 윤 전 대통령 탈당론이 확산하는 것은 김 후보 지지도 정체가 이어지는 것과 관련 있다. 선거운동 나흘째를 맞은 이날까지 김 후보 지지도는 3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탄핵된 윤 전 대통령과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기가 어렵지만, 김 후보는 후보 교체 파동을 겪으면서 전통적 지지층이 온전히 결집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김 후보가 윤 전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기가 고민스러운 것 같다”고 했다. 진영 결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 후보가 직접 윤 전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면 그의 지지자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12·3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 왔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 재판관 전원 일치 탄핵 결정을 두고는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김 후보가 보인 이런 모습에 탄핵 반대론자들이 공감하면서 김 후보는 범보수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로 올라섰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 김 후보와 4강전에서 경쟁한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물론 후보 단일화 상대였던 한덕수 전 총리도 김 후보 선거운동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윤상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후보의 지지층이 겹치는데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을 내치는 듯한 메시지를 반복한다면, 과연 그 지지층이 김 후보에게 표를 주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구(舊)여권 일각에선 김 후보가 윤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결단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윤 전 대통령도 애초 ‘때가 되면 김 후보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다만 후보의 의중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결행하는 게 당과 후보에게 도움이 될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하지만 “김 후보 처지를 알 만한 윤 전 대통령이 김 후보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메시지를 내는 건 자기에 대한 탈당 요구가 불편하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 아니냐”는 말도 국민의힘에서 나온다.

이런 가운데 김용태 비대위원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그동안 미뤄 왔던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정당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며 ‘대통령 당무 개입·사당화 금지’ 등을 당헌·당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것이 선행돼야 한동훈 전 대표나 홍준표 전 시장에게 연락드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늘 당은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한 전 대표를 포함해서 많은 분이 응답해주실 차례”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의 잔여 임기인 다음 달 30일까지 국민의힘을 이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