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에 출마한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표 공약에 구체성·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공약을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방법론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의 10대 대선 공약을 보면 ‘모두가 잘사는 나라’(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북핵을 이기는 힘’(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과 같이 추상적인 표현들이 다수 등장한다.
선거 초반부터 앞서 나가는 이재명 후보의 경우 ‘실책을 최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 분석이다. 반면 대선 후보 등록일 직전까지 단일화 파동에 휩싸인 국민의힘 내부에선 “후보가 정책을 검토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토로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선 유권자들이 오로지 정쟁·이념으로만 투표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 공약과 관련, 이재명 후보는 “세계질서 변화에 실용적으로 대처하는 외교안보 강국(强國)을 만들 것”이라는 방향성만 제시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촉발된 ‘관세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 후보의 10대 공약에서도 외교·통상 분야는 ‘국익 최우선 산업 경쟁력 제고’ ‘전략적 통상 정책 추진’과 같은 모호한 표현만 담겼다. 이와 관련해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유리한 국면에서 무리한 공약 발표로 논쟁 거리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선거 변수를 최소화하는 ‘몸조심 전략’의 하나라는 취지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북핵을 이기는 힘, 튼튼한 국가 안보”라는 외교·안보 공약을 제시했다. 세부적으로 “한미 동맹에 기반해 핵 확장 억제 실행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북핵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달라진 여건에 발맞춘 새로운 대책이라기보단, 이전의 정책을 그대로 갖다 붙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는 미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취임 즉시 한미 정상회담 개최’ ‘핵 확장 억제력 강화’도 공약에 포함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관계자는 “외교·안보 분야에선 기존 한미 동맹 방향을 유지한다는 것이 대원칙”이라면서도 “최근까지도 단일화 논란이 지속되면서 후보와 공약 논의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1%대로 접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주요 후보들은 눈에 띄는 성장 정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이재명 후보의 10대 공약에서 성장 정책 관련은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 건설” 정도다. 이를 위해 이 후보는 ‘AI 등 신(新)산업 집중 육성’ ‘K콘텐츠 지원 강화’를 제시했는데, 예산 마련 방안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빠져 있다. 김문수 후보는 1호 공약으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꼽았다. 이에 대해 김 후보는 “민간 자율성 극대화로 ‘자유 주도 성장’을 하겠다”고 했지만 감세(減稅)와 같은 이행 방법에선 반론이 나오고 있다. 매년 100조원 안팎의 재정 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감세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각 후보들은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재정 사업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8세 미만에서 18세 미만까지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5년간 35조5000억원(연평균 7조1000억원)이 들어간다는 추산이 나온다. 이 외에도 이 후보는 다양한 재정 사업을 약속했지만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선 ‘정부재정 지출구조 조정분, 2025~2030 연간 총수입증가분(전망) 등으로 충당할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김 후보의 ‘디딤돌소득 전국 확대’ 공약에도 조 단위의 재정 투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딤돌소득은 가구 소득이 기준소득(중위소득 65~85%)을 밑도는 가구에 소득 부족분의 절반을 현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여기에는 연간 최소 10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김 후보도 특별한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