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국민의힘)·한덕수(무소속) 대선 후보 측은 9일 밤 후보 단일화와 관련한 실무 협상을 했다. 6·3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11일)을 이틀 앞두고 처음으로 두 후보 대리인단이 협상에 나선 것이다. 그간 ‘후보 등록 마감 전 단일화’에 유보적이었던 김 후보 측이 ‘김 후보의 대선 후보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 등이 이날 법원에서 기각된 이후 실무 협상을 요구하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날 심야에 두 차례 단일화 협상을 벌였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단일 후보를 결정하는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적용할지를 두고 대립한 것이다. 김 후보 측은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한 후보 측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여론조사에 참여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며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10일 새벽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어 단일 후보 지명 절차를 밟아나가기로 했다.
김 후보 측 김재원 후보 비서실장은 이날 밤 첫 단일화 실무 협상이 20분 만에 결렬되자 기자들과 만나 “한 후보가 전 국민 앞에서 어떤 방식과 절차든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믿고 오늘 몇 가지 단일화 원칙을 제시했다”며 “그런데 한 후보 측 관계자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협의하지 않겠다고 언성을 높였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경선 여론조사 때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역선택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김 실장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데 (응답자의) 정당 지지 여부를 물어서 결정한다는 게 정상적인가”라고 했다.
이에 한 후보 측 손영택 전 총리 비서실장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뽑는 단일화 과정인데,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제외하는 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이 이처럼 대립한 것은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적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조사 결과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 지지층은 한 후보보다 김 후보를 단일 후보로 적합하다고 응답한 경향이 나타났다.
국민의힘은 이날 김·한 후보 단일화 문제를 두고 롤러코스터를 탔다. 애초 국민의힘에선 이날 오전 11시에 예정된 국회 의원총회에 김 후보가 참석하기로 하면서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돌았다. 김 후보는 이날 의원총회에 50분 늦게 도착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 인사들은 국회 본관 입구에 일렬로 서서 김 후보를 맞았다. 의원들은 김 후보를 기립 박수로 맞이했다. 권 원내대표는 김 후보에게 꽃다발을 건넨 뒤 “제가 단일화에 대한 열망으로 후보에게 다소 과격한 발언을 했던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어 김 후보가 연단에 서자 의원들은 박수를 보냈고, 김 후보는 양팔로 ‘하트’를 만들어 화답했다.
그러나 김 후보가 “당 지도부는 저를 끌어내리고 무소속 후보를 우리 당 후보로 만들기 위해 온갖 불법과 부당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김 후보는 “저를 믿어달라. 제가 나서서 (이재명 후보를) 이기겠다”고 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권 위원장은 “(김 후보 발언) 내용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더 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뒤 의총장을 떠났다. 그러자 김 후보도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의원들은 퇴장하려는 김 후보 팔을 붙잡으며 말렸지만 김 후보는 뿌리치고 나갔다. 일부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해 “혼자 떠들 거면 왜 왔느냐”고 소리쳤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두고 공개 석상에서 충돌하면서 ‘후보 등록 시한 전 단일화’는 어려워진 것 같다는 말이 국민의힘에서 나왔다. 그러나 오후 들어 김 후보 측이 국민의힘 지도부가 추진 중인 단일화 절차를 중단해 달라며 서울남부지법에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오는 11일 소집한 전국위원회에서 단일 후보를 지명하는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날 밤 김·한 후보 측 대리인이 만나 단일화 협상을 두 차례 벌인 것을 두고는 양측이 ‘명분 쌓기’ 싸움을 벌인 것이란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