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등록 마감(11일)을 사흘 앞둔 8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 문제를 두고 김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정면충돌했다. 이런 가운데 김·한 후보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만나 담판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한 후보는 이날 오후 4시 30분부터 국회 야외 카페에서 1시간 동안 회동했다. 회동은 취재진과 국민의힘 의원 30여 명이 내내 지켜보고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진행됐다. 한 후보는 김 후보에게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라며 “김 후보가 경선 기간에 22번이나 ‘한덕수 후보와 단일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단일화를) 일주일 연기하자’고 한 것은 결국 하기 싫다는 말”이라고 했다. 이어 “당장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결판을 내자”고 했다.
이에 김 후보는 “왜 뒤늦게 나타나 돈을 내고 모든 경선 절차를 거친 사람에게 ‘왜 약속을 안 지키냐’며 청구서를 내미느냐”고 했다. 김 후보는 “공식적으로 하자 없이 선출된 후보가 단일화를 강요당하는 경우는 세계 정당 역사상 처음일 것”이라며 “한 후보께서 출마를 결심했다면 당연히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안 들어오고 밖에 계시냐”고도 했다.
한 후보는 “국가의 전체적 상황이나 국민·당원들의 희망을 볼 때 일주일 미루고 이런 것은 정말 예의가 아니라 믿는다”고 했다. 그러나 1시간여 대화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한 후보는 “둘의 입장에 변함이 없으니 오늘 모임은 이것으로 끝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김 후보도 동의하면서 “(한 후보는) 정당에 왔으니 여기대로의 법과 규정과 당헌, 당규, 관례가 있다는 것을 살펴달라”고 했다.
김·한 후보는 회동 후에 각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면서도 신경전을 이어갔다. 김 후보는 “정당이 나서서 한 후보와 단일화해야 한다고 온갖 불법 행위를 하는 건 역사상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 지도부가 오는 11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단일 후보를 지명하는 로드맵을 제안한 것에는 “여론조사만 가지고 후보를 정하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 있나”라고 했다. 반면 한 후보는 “단일화는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 등록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지도부와도 공방을 벌였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8시 40분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 지도부의 단일화 절차 돌입에 대해 “강제 후보 교체 시도이자 김문수를 끌어내리려는 작업”이라며 “중단하라”고 했다. 김 후보는 대신 일주일간 각자 선거 캠페인을 해보고 14일 양자 방송 토론, 15~16일 여론조사를 실시해 단일 후보를 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강제 단일화는 법적 분쟁으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김 후보는 이날 오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김문수”라며 후보자 지위 확인을 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서울남부지법에 냈다.
그러자 국민의힘 지도부도 오전 9시 비대위 회의를 열고 반격에 나섰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오늘부터 당 주도의 단일화 과정이 시작될 것이며, 이 결정에 따른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했다. 권 위원장은 김 후보의 ‘내주 중 단일화’ 제안과 관련해서는 “‘이재명식’ 주장”이라고 했다.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는 취지였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정치는 본인의 영달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움직임에 맞서 김 후보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거듭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당에서 제 선거 일정은 안 짜주면서 한 후보 일정은 잡아준다. 당에서 (한 후보에게) 꽃가마를 준비했으니 돈도 필요 없다고 했을 것”이라면서 “어떠한 경우에는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한 후보에게 맞서 국민의힘 외부 세력과 연대에 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권영세 위원장도 오후 2시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후보 등록 이전에 단일화가 끝나야 우리 당의 자금과 조직을 온전히 사용하는 ‘기호 2번’ 후보를 지킬 수 있다”며 “단 0.1%라도 더 경쟁력 있는 후보를 찾아 이재명 독재를 막아내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 후보의 잘못된 판단으로 우리가 대선에서 패배하게 되면 모두가 역사와 국민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니 김 후보는 ‘김덕수’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날 오후 6시로 잡아놨던 김·한 후보 간 양자 토론회는 김 후보가 불참하겠다고 해 취소됐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한 후보 중 누구를 단일 후보로 선택할지를 묻는 당원·국민 대상 여론조사는 계획대로 이날 오후 5시에 시작했다. 김 후보는 채널A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여론조사에서 한 후보가 이기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공식적으로 전당대회에서 뽑힌 후보”라며 “(선관위에) 후보로 등록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