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7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것이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했다./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으로 이달 15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 기일 등이 대선 이후로 연기됐지만, 민주당은 이 후보에게 유리한 입법은 멈추지 않았다. 민주당은 7일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자체를 중단시키는 법안과 이 후보가 기소된 공직선거법 조항을 개정해 처벌 자체를 못 하게 하는 법안을 각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정치권에선 “다수 의석을 남용한 민주당의 ‘입법권 폭력’이자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시킨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을 정지하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지난 1일 이재명 후보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다음 날 이 법안을 발의했다. 현직 대통령의 형사 불소추를 규정하는 헌법 84조와 관련해 대통령의 ‘재판’은 계속 진행되는지를 두고 법조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데, 아예 법으로 ‘재판도 정지된다’고 못 박겠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이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심이 무죄를 선고했으나, 지난 1일 대법원이 1심 법리를 채택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이 계속 진행된다면 이 후보에게 벌금 100만원 이상의 ‘당선 무효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처리한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조항(250조 1항)을 개정하는 법안도 처리했다. 현행 조항은 후보자 등의 출생지·가족 관계·신분·직업·경력 등·재산·행위·소속 단체 등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할 때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여기서 ‘행위’는 빼겠다는 내용이다. 법안 시행은 공포한 날부터 한다고 돼 있다.

이 역시 이재명 후보의 혐의와 관련이 있다. 이 후보는 “고(故) 김문기씨와 함께 골프를 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백현동 개발 부지 용도를 상향했다” 등 자신의 ‘행위’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고, 대법원은 유죄라고 봤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고 이 후보가 당선돼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공포하면, ‘셀프 면소(免訴·법 조항 폐지로 처벌할 수 없음)’를 하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헌법소원의 대상에 ‘법원의 재판’도 포함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 법조인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가 나올 때마다 불복하겠다는 심산 아니냐”고 했다. 민주당은 또 대법관 정원을 현재의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대법관들을 친민주당 성향 법조인으로 채우겠다는 의도”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이 후보 사건 판결에 대해 “사법부 기득권 세력의 대선 개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이재명 후보 맞춤형 법안들을 각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뒤 상황을 보겠다는 생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전에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 처리를 할지 대선 이후에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 지표상 이재명 후보가 범보수 후보들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뒤 법안들을 처리해도 늦지 않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자신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 기일이 대선 이후로 연기되자 “법원이 헌법 정신에 따라 당연히 해야 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기본적으로 사법부를 신뢰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균질하지 않다”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고,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를 삼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데,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는 국민의 상식, 구성원들의 토론을 통해 정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법부 구성원’은 입법 조치 등을 통해 솎아내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입법권을 장악한 이 후보와 민주당이 행정권까지 쥐게 된다면, 사법부 흔들기는 더 심화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