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범보수 진영에선 “단일화 없이는 대선은 해보나 마나”라며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주요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승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선거 구도나 판세에 따라 변수가 있었지만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진영이 승리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래픽=백형선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해 집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선관위에 후보 등록을 하고 캠페인을 벌이던 안 후보는 사전 투표 하루 전, 본투표 엿새 전 윤 후보로 단일화하는 데 극적으로 합의하고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결국 윤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 신승(辛勝)을 거뒀다.

김문수 후보 측에선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사례 등을 들어 ‘후보 등록 전 단일화’에 선을 긋고 있다. 투표용지가 인쇄되는 25일, 나아가 사전 투표가 시작되는 29일 전까지 단일화를 성사시켜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양당 지지율이 비등했던 지난 대선과 이재명 후보가 독주하는 이번 대선은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이 나온다.

이런 차원에서 국민의힘에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모델을 거론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가 됐지만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일부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 추진 협의회(후단협)’가 발족됐다. 이에 노 후보가 선제적으로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단일화 추진에 나섰다. 두 사람은 단일화 룰에 합의한 뒤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 24일 전 노 후보로의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이틀 뒤 노 후보는 단일 후보로 선관위에 등록했다. 비록 정몽준이 선거 직전 지지 철회를 선언했지만, 노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문수 후보는 과거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다가 무산된 사례가 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후보로 나선 김 후보는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와 단일화 협상을 이어가다가 실패했다. 이에 두 후보는 각자 출마했고 박원순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