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총괄 선거대책본부장이 5일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12일 이전까지 선거운동 기간 중 잡혀 있는 출마 후보들에 대한 공판 기일을 모두 대선 이후로 변경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6·3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12일까지 자기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 대법원장 탄핵소추를 포함해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대법원은 지난 1일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항소심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오는 15일로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사법부를 향해 재판을 진행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나온 것이다. 법조계에선 “민주당의 요구는 사법 행정권과 재판 독립성 침해이자 대법원장에게 하급심 재판에 불법적으로 개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6·3 대선은 10~11일 후보 등록을 거쳐 12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간다. 선거운동 기간에 이 후보와 관련해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을 포함해 최소 4차례 형사 재판 기일이 잡혀 있다. 이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에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출석하지 않도록 공판을 대선 이후로 미루라는 게 윤호중 본부장 주장이다.
윤 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법원이 12일까지 공판 연기를 하지 않을 경우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탄핵에 돌입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 물음에 “입법부에 국민이 부여한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사법 쿠데타가 진행되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윤 본부장은 또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재판 진행은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다”면서 “이를 방해하는 사람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의 주권 행사를 가로막는 것이므로 입법부가 응징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민주당의 대법관 탄핵 움직임에 대해 “당무에 대해서는 당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 등 이 후보에 대해 유죄 의견을 낸 대법관 10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미리 작성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대선 전까지 李 재판 4개… 당내 “속행하면 판사 탄핵”
민주당은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재명 후보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를 비롯해 국회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 도입을 거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5일 사법부를 향해 대선 선거운동 기간(5월 12일~6월 2일)에 잡혀 있는 이 후보 관련 형사재판을 모두 대선 이후로 미루라고 요구하면서 사법 행정과 법원 재판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호중 민주당 총괄 선대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의 이 후보 선거법 유죄 판결 선고를 ‘5·1 사법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윤 본부장은 “국민이 입법부에 부여한 모든 권한을 동원해 ‘조희대 사법부’의 광란의 행진을 반드시 막겠다”면서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법봉보다 국민이 위임한 입법부의 의사봉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금실 총괄 선대위원장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국민 주권 행사 기간”이라면서 “법원이 재판과 판결을 통해 선거를 흔드는 것은 매우 중대한 위헌”이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도 이날 경기 여주를 방문하다가 기자들과 만나 “헌법 116조에 ‘선거운동에 균등한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서 “헌법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잡혀 있는 형사재판을 선거 뒤로 미뤄 달라는 취지다.
민주당은 표면적으론 선거운동 기간에 잡힌 모든 대선 후보들의 재판을 대선 후로 미루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후보는 이 후보가 유일하다. 이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서울고법의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5월 15일)을 비롯해 서울중앙지법의 대장동 사건 재판(5월 13일·27일), 서울고법의 위증교사 사건 재판(5월 20일) 기일이 잡혀 있다. 현시점에서 선거운동 기간에 최소 4차례 형사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일인 6월 3일에도 위증교사 사건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다. 민주당이 재판 연기 결정 시한으로 제시한 12일엔 수원고법에서 이 후보 아내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예정돼 있다.
정당이 대법원에 특정 피고인과 관련된 형사재판을 일괄적으로 연기하라고 요구하는 건 이례적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 후보자가 사실상 소추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면서 “공판 연기 기일 요청도 이 같은 법의 취지에 따라 달라는 정당한 요구”라고 했다. 민주당에선 이런 재판 기일 변경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조 대법원장 등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 총괄본부장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서 사법부의 선거 개입, 선거 난입을 막을 방법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했고, 강훈식 종합상황실장도 “당선 전에 (선고가) 확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모든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판사 출신 최기상 의원은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선거운동 기간에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하는 순간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본다”며 “탄핵해서 재판을 정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민주당이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재판을 정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과 관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주 이 법안을 발의하자마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했고, 이번 주 법사위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본회의 처리를 밀어붙일 경우 여론의 역풍이 일 수 있다. 그런 만큼 대통령 선거일까지 재판을 연기해 놓고,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법안을 처리해 재임 기간 내내 재판을 정지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에게 탄핵소추뿐 아니라 특검·국정조사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MBC라디오에서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 탄핵소추를 보류했다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 “보류한 게 아니라 지도부에 일임한 것”이라고 했다. 언제든지 탄핵소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석 선대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조 대법원장을 “윤석열 아바타”라고 일컫으며 “왜 그런 짓을 했는가? 국민의 질문과 요구에 답하고 사죄하고 사퇴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