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일 강원 화천군의 한 군장점에서 병장 계급장이 달린 육군 모자를 쓰며 웃고 있다. 장군 출신 김병주(왼쪽) 최고위원이 명예 병장이 돼 보라며 모자를 쓰길 권하자, 이 후보는 “또 계급 사칭했다고...(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 이 후보는 소년공 시절 입은 팔 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뉴시스

대법원이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이 사법부를 맹비난하고 나왔다. “대법관을 탄핵소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170석의 원내 1당이 자기 당 대선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사법부를 향해 강경 기조를 취하고 나왔다는 말이 나왔다.

반면 이 후보는 전날 대법원 판결에 직접적인 대응을 피하고 현장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당에 ‘사법 리스크’ 대응을 맡기고, 자기는 정책 공약을 발표하며 현장을 다니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후보의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사법부 공격이 격화하면서 이 후보의 중도 확장을 염두에 둔 캠페인 기조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민주당 의원들은 2일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를 맹비난하고 나왔다. 정진욱 의원은 페이스북에 “(이 후보에 대해 유죄 의견을 낸) 10명의 사법 쿠데타 대법관을 탄핵해야 한다”고 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내란 대행 한덕수, 최상목이 사퇴했다”며 “‘사법 내란’ 조희대 (대법원장)도 사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 대법원장 등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날 개최한 첫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대법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선대위 회의엔 이 후보가 영입한 보수 진영 출신 인사들도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공동선대위원장은 “대법관들이 어제와 같은 퇴행적이고 헌정사의 시곗바늘을 30~40년대로 돌려놓는 판단을 했다고 본다”며 “판결 선고 내용을 보면서 참으로 서글프고 왜 내가 법조인이 됐는가 생각할 정도였다”고 했다.

전날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 환송 판결에도 이 후보는 이날 평화·안보 공약을 발표하고 현장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이 후보는 이날 “9·19 군사 합의를 복원하고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 대북·대남 방송을 상호 중단해 접경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겠다”고 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9·19 군사 합의는 ‘남북이 일체의 군사적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북한이 2023년 11월 일방적으로 파기를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후보가 9·19 합의를 복원하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이 후보는 전날 경기 포천·연천을 찾은 데 이어 이날은 강원 철원·화천·양구 등 접경 지역을 방문했다. 이 후보는 이날 현장 방문 도중 최상목 전 부총리 탄핵소추 등과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우리 선대위 그리고 당 지도부, 원내에서 하는 일이니까 거기에 한번 물어보라”며 “민생과 현장에 조금 집중을 하겠다”고 했다. 정쟁형 현안에는 거리를 두고 정책 중심 캠페인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 패배 후 당 대표직을 연임하면서 당 장악력을 키웠다. 이번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9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전날 대법원의 이 후보 유죄 판결 선고를 계기로 사법부에 강경하게 돌변한 민주당 기류가 이 후보 의중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민주당의 전날 최 전 부총리 탄핵소추안 표결 시도에도 이 후보 의중이 실렸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8일 서울현충원을 찾았을 때 전직 대통령 묘역과 함께 박태준 포스코 초대 회장 묘소도 참배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이 후보가 통합과 성장의 가치를 지향하겠다는 메시지를 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김성태 전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이 후보가 민주당의 이념을 뛰어넘는 중도 실용주의와 안정된 후보라는 걸 보여줬는데, 최상목 (전 부총리) 탄핵 한 방에 다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강경 기조로 인해 이 후보가 한동안 보여온 정책 ‘우클릭’ 움직임의 캠페인 효과가 상당 부분 반감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법원 판결로 되살아난 사법 리스크와 별개로 이 후보의 중도화 캠페인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고 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같은 말을 해 신뢰도를 스스로 깎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가 ‘상속세 18억원까지 면제’ ‘월급쟁이 근로소득세 완화’ 등 정책 우클릭을 통해 확보한 중도층 표심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