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일 대법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이날 밤 국회 본회의를 열어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을 시도했다. 추가경정예산안 설명을 위해 국회를 찾았던 최 부총리는 탄핵 표결이 진행되던 도중 사퇴했다. 민주당은 이날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안도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1번째 탄핵소추안 발의다.
민주당은 ‘국정 마비’라는 비판에도 윤석열 정부 들어 총 13차례 탄핵소추안을 본회의 의결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중도 유권자를 감안해 자제해 왔지만 이날 대법원의 파기 환송으로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분출하면서 보복성 탄핵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날 오후 3시 26분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선고하자 민주당은 오후 5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명백한 선거 개입’이라는 푯말을 들고 “조희대(대법원장)를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3시에 파기환송, 4시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사퇴, 무슨 짜고 치는 고스톱이냐”면서 “국민께서 사법 쿠데타를 진압하고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워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진 비공개 의총에선 “대법 판결을 전면전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또 최 대행 탄핵안을 즉각 처리하고, 심 총장도 비상계엄 가담 의혹을 물어 탄핵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당 지도부와 선대위가 연석회의에서 ‘쌍탄핵’을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날 밤 법사위와 본회의에 관련 내용이 상정됐다.
오후 8시 30분 열린 법사위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 “왜 화풀이성 탄핵을 하느냐”며 반발했다. 그러나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표결을 강행했고, 법사위는 민주당·조국혁신당 주도로 최 부총리 탄핵안을 가결했다.
민주당은 오후 9시 본회의를 열고 최 부총리 탄핵안 단독 처리를 추진했다. 그 직후 최 부총리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사의를 표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최 부총리 탄핵안 표결 절차를 진행하자 한 대행이 최 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무기명 투표를 하던 도중에 우 의장은 “정부로부터 최상목의 면직이 통지돼 탄핵소추 대상자가 없으므로 투표를 중지하겠다”며 투표 불성립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날 심 총장 탄핵안을 본회의에 보고한 뒤 법사위에 회부했다. 심 총장 탄핵안은 본회의 보고 뒤 24시간 이후 처리가 가능한데, 민주당은 가능한 한 빨리 본회의를 다시 열어 심 총장 탄핵안 처리도 강행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또 2일 오전 대법원에 모여 대법원 규탄 기자회견도 갖기로 했다.
앞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에 대해 “사법 쿠데타” 등 날 선 반응을 쏟아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명백히 정치 재판이고 졸속 재판”이라고 했다. 최고 사법 기관인 대법원 판단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 대변인은 후보 교체 가능성에 대해 “없다”면서 “이 후보는 국민선거인단 경선으로 민주당 후보에 선출됐다”고 했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감히 주권자의 다수 의사를 거스르는 것은 ‘사법 쿠데타’에 해당한다”고 했다. 정청래 의원은 “법 기술 법정에서 대선 민심을 흔들어 보겠다지만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선고 불복’으로 해석되는 격한 발언들도 나왔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조희대와 한덕수가 대선 개입과 먹튀 출마로 짜고 쳤느냐”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막고 대통령 당선 후 소추 논란을 차단하는 모든 입법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김병기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사법 권력이 헌법 질서를 무시하고 입법·행정 권력까지 장악하겠다는 거지. 한 달만 기다려라”는 글을 올렸다. 이 후보가 6·3 대선에서 정권을 잡으면 사법부에 보복을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김 의원은 이후 ‘한 달만 기다려라’는 문구를 수정했다.
이 후보는 선고가 이뤄진 시각 종로의 한 포장마차에서 배달 라이더 등 특수형태 근로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었다. 간담회는 판결 선고 약 30분 뒤 종료됐고, 이 후보는 그제야 휴대전화를 통해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을 보고받았다. 이 후보는 굳은 얼굴로 취재진에게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의 판결”이라면서 “법도 국민의 합의인 것이고, 결국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후 페이스북에 “오로지 국민만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어 예정됐던 포천·연천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한 지지자가 대법 판결에 대해 “어떡하느냐”고 하자 이 후보는 “그거 아무 것도 아냐. 잠시의 해프닝이야”라며 웃었다.
최 부총리 사임으로 재직 중인 국무위원은 14명으로 줄었지만 정부는 국무회의 구성이나 개의에는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상 국무회의는 대통령·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데 국무위원 사임 등은 구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