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최근 ‘한·미·일 협력’을 기초로 한·중 간 전략적 협력을 확대한다는 외교·안보 기조에 대해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대선 때 강조했던 ‘남북 종전 선언 추진’이나 ‘남북·남북러 철도 사업 추진’ 등은 빠졌다고 한다. 경선 캠프에서 외교 분야 정책을 맡았던 위성락 민주당 의원은 “종래에는 평화에 방점이 찍혔지만, 지금은 평화 외에 비핵화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정계 입문 이래 미국·일본 및 한·미·일 협력에 부정적 발언을 자주 했다. 이 때문에 친중·친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급격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관계자는 “우리 국민은 물론 동맹국들이 이 후보의 외교·안보관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외교·안보 안정감을 보여주는 게 이 후보의 큰 숙제 중 하나”라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이와 같은 발언이 과거와 달라 해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미 동맹이 근간”
이 후보는 2017년 2월 저서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주한 미군 주둔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이 미국의 종속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마땅히 타국과의 주둔비를 비교해가며 합리적으로 논쟁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사드 배치에 대해선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이 중국·북한 등 군사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방어하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
경기도지사 시절인 2022년 5월 쓴 ‘함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습니다’에선 “미국이 언제 또다시 일본에 ‘제2의 태프트’를 보내 밀약을 맺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이 일제의 조선 지배권을 승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에 빗대, 현대에 이르러서도 미국이 일본과 함께 한국의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후보는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근간이자 첨단 기술 협력과 경제 발전을 위한 주요 자산”(2025년 4월 ‘결국 국민이 합니다’)이라고 했다.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미 동맹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민주당이 양국 관계를 손상해 얻을 수 있는 게 있겠느냐”고 했다.
이 후보는 윤석열 정부가 공들여왔던 한·미·일 협력 체계에 대해서도 최근 주한 미국·일본 대사를 만나 “한·미·일 간 협력 관계도 계속될 것”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2022년 10월 한·미·일 동해 연합 훈련에 대해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날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 비판한 것에서 180도 입장이 바뀐 것이다.
◇“트럼프에게서 내가 보인다”
이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해서는 꾸준히 우호적이었다. 성남시장이었던 2017년 1월에 쓴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에 당시 미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를 언급하며 “얌전히 기성 체제에 순응해 왔던 평범한 시민들이 엘리트 중심의 기성 질서에 도전한다”고 했다.
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11월 국회 간담회에서도 대선에서 이긴 트럼프를 언급하며 “어느 곳을 가나 사람들 관심이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자신의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을 연관 지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나를 ‘한국의 트럼프’ 같다고도 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현재 대미 외교 제1과제인 관세 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로 선회해 동맹국조차 가차 없이 압박하고 있다”(지난 25일 민주당 경선 토론) 정도의 발언만 했다.
◇對日 태도도 유화로 돌변
그는 성남시장 시절 “해방 후 70년이 넘도록 청산되지 않은 친일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등 반일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2023년 8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 논란 때엔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다시 한번 환경 범죄로 일으키려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뷰에서는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진영 일원으로 일본과 관계를 심화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나서는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고 했다.
다만 이 후보는 지난 2월 WP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강제 징용 노동자 보상 문제 등 역사적 문제에서는 물러날 수 없다”고 했다. 20대 대선 후보 시절엔 “영토·주권 문제, 경제·사회 교류를 분리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교류에선 일본과 협력하되 강제 징용 등 역사 문제를 놓고는 일본의 양보를 전제로 대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