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총선 참패 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의 후임 인선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 거론되는 하마평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조차 “용산의 국정 쇄신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혹평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르면 14일 후임 비서실장 등 인사 발표가 날 수 있다는 정치권 관측을 부인하며 “후보 검증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실 주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현재 총리 후보로 서울 용산에서 5선 고지에 오른 권영세 의원과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이번 총선 때 전남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이정현 전 의원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수성갑에서 6선에 오른 주호영 의원도 총리 후보 하마평에 거론된다. 비서실장 후보로는 인천 계양을에서 낙선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유력 검토되는 가운데 충청 출신 정진석 의원도 거론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다른 대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권영세 의원 총리 기용에 가장 큰 걸림돌은 이태원이 있는 서울 용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핼러윈 참사 특별법 재표결을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무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권 의원 기용은 핼러윈 참사를 다시 정치권 이슈로 떠오르게 할 것”이라며 “국민에게 오기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원 전 장관 비서실장 기용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천 계양을에서 사생결단식 맞대결을 했고, 과거 ‘대장동 1타 강사’를 자처해 협치 민심에 부합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검사 출신이어서 “또 검사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당 대표 출신으로 비서실장 후보로도 거론되는 김한길 위원장은 여야 양쪽에서 모두 불만이, 대구·경북 출신인 주호영 의원은 수도권에서 민심을 얻는 데 참패한 여권 입장에서 도로 영남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본인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비서실장 후보로 장제원 의원이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일각에서 거론되는 데 대해서는 여권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번 총선에 낙선한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 나오는 하마평으로는 국민에게 어떤 변화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런 하마평 자체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마음이 너무 답답하다”라고 했다. 서울 도봉갑의 김재섭 당선자는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거론되는 인사들이 기용되면) 너무 인물들이 한 당에 확 쏠려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국정 쇄신이 되겠나”라며 “차라리 그냥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인적 개편이 여권이 참패한 총선 결과에 따른 국정 쇄신 의지를 가늠할 첫 시험대라는 측면에서 대통령실도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다양한 후보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대한 성찰과 함께 중단 없는 개혁 의지를 담은 대국민 담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용산이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고 했다.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국무총리는 과반 의석인 민주당이 반대하면 임명할 수 없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3일 “원희룡, 김한길, 장제원, 이상민, 권영세 등 총리와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의 면면을 볼 때 대통령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런 식의 인사가 단행된다면 국민을 이기려는 불통의 폭주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