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표 찍고 꽃도 찍고 - 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서울 강남구 역삼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이 활짝 핀 벚꽃 아래서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이날 투표율은 15.6%로, 역대 총선의 첫날 사전 투표율로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사전투표율이 15.61%를 기록했다. 4년 전 21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12.14%)보다 3.47%포인트 높은 것으로, 역대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지난 대선(첫날 17.57%)에는 못 미치지만 역대 총선에선 최고치다. 6일까지 이어지는 사전투표와 10일 본투표에서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경우 최종 투표율은 지난 총선(66.2%)과 대선(77.1%) 사이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사전투표율은 줄곧 2020년 총선보다 높고 2022년 대선보다는 낮은 기조를 유지했다. 지역별로는 전남 23.67%, 전북 21.36%, 광주 19.96% 등 호남이 가장 높았고, 대구가 12.26%로 가장 낮았다. 서울은 15.83%, 경기는 14.03%였다. 서울에선 종로구가 17.92%로 최고, 강남구가 13.30%로 최저였다.

사전투표율은 통상적으로 최종 투표율과 연계돼 왔다. 보수와 진보 지지층이 최대로 결집한 것으로 평가되며 0.73%포인트 차 승부가 났던 지난 대선의 경우 첫날 사전투표율 17.57%, 최종 사전투표율 36.93% 모두 2014년 사전투표 도입 이래 최고치였다. 그 결과 본투표를 합한 최종 투표율은 77.1%로 2000년대 선거 중 둘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역대 총선 중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던 2020년 총선의 경우 첫날 사전투표율은 12.14%, 최종 사전투표율은 26.69%였다. 2020년 총선 최종 투표율은 66.2%로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았다.

그래픽=박상훈

이날 여야는 앞다퉈 지지자들의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전에서 사전투표를 마치고 유세를 하며 “내 삶을 망치고 권력과 예산을 국민의 의사에 반해 행사하면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서울 신촌에서 사전투표를 한 뒤 “이번 총선은 자기 죄를 방어하겠다는 사람들과 법을 지키며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들 사이의 대결”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최종 투표율이 65% 이상이면 민주당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투표율이 60%만 넘어도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6차례 총선에서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이 크게 이겼고, 대체로 투표율 60% 선에서 승패가 갈렸다는 데 주목한다. 투표율이 66.2%로 가장 높았던 2020년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103석을 얻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77석 차 압승을 거뒀다. 투표율이 58.0%였던 2016년에는 민주당 123석,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122석으로 민주당이 1석 차로 제1당이 됐다. 투표율이 46.1%였던 2008년에는 반대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153석을 얻어, 민주당(81석)에 72석 차로 대승했다.

국민의힘도 사전투표와 본투표를 가리지 않고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소로 이끌어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 결과를 지역구별로 분석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지역구 119곳 중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된 17곳은 대체로 사전투표율이 평균보다 높았던 지역이었다. 이런 지역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사전투표에서 민주당 후보에 크게 밀리지 않으면서 본투표에서 승리해 당선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은 “일부 지지자들이 ‘사전투표는 부정투표’라고 인식하지만, 국민의힘 후보들이 이긴 지역에선 이런 공식이 해당되지 않는다”며 “사전투표든 본투표든 보수층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승리의 기반”이라고 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이 유리하다’는 통설도 지난 대선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으로 깨졌다고 본다.

해외여행 떠나기 전에 공항서 사전투표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5일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서 투표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전문가들은 사전투표에 진보 지지층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보수 지지층의 사전투표 참여가 늘면서 과거와 같은 불균형은 많이 사라졌다고 봤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사전투표는 경제활동을 많이 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40~50대는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지만, 20~30대 남성 유권자들이 보수 성향을 보이고 있어 사전투표율만으로 정당별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과거 20~30대는 항상 당시 정권에 반대하는 성향을 보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보수 정권인데도 진보 성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중요한 것은 전체 투표율이 아니라 세대별 투표율”이라고 했다.

사전투표율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최종 투표율도 높을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사전투표는 2014년 도입되고 2020년까지는 전체 투표율을 높이는 역할을 했지만, 그 뒤로는 그런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총선·대선에서 사전투표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최종 투표율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신율 교수는 “유권자들이 사전투표에 익숙해지면서 사전투표를 많이 하게 된 것일 뿐, 최종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표하는지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달 시행한 유권자 의식 조사에선 응답자의 41.4%가 사전투표를 하겠다고 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이날 ‘정부에 항의하는 표시로 대파를 들고 투표하러 갈 수 있느냐’는 질의가 들어와, 투표소 관리자들에게 ‘유권자들이 대파를 정치적 의사표시 목적으로 갖고 온 경우엔 대파를 투표소 밖 적당한 장소에 보관하게 한 뒤 투표소에 들어오도록 안내하라’고 알렸다고 밝혔다. 선거법은 투표소 안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언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대해 이재명 대표는 “대파가 못 들어가면 디올백도 못 들어가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판단 사항”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