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4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제20대 대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9 대선 현수막·피켓에 ‘살아 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세력들에 나라를 맡기시겠습니까’라는 문구 사용을 허용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중앙선관위는 이와 함께 ‘청와대를 굿당으로 만들 순 없습니다’ ‘무당도 모자라 신천지가 웬 말이냐’라는 문구 사용도 허용했다. 최근 선관위는 이런 문구를 선거 현수막에 써도 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문의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민주당이 이런 문의를 한 이유는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를 둘러싼 무속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이런 문구는 후보자에 대한 허위 사실 공표 및 비방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110조에 위반된다”며 “선관위가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며 여당 편들기에 나섰다”고 했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지난 16일 윤 후보와 아내 김건희씨가 소의 가죽을 벗긴 굿판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윤 후보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김 의원을 고발했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민주당이 윤 후보를 겨냥해 ‘술과 주술에 빠진 대통령을 원하십니까’ ‘일꾼 vs 술꾼, 여러분은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문구 사용도 허용했다. 선관위는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를 특정하지 않는 선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선관위가 유권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성 문구 현수막을 허용해 흑색선전과 상호 비방전을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소 가죽 벗기는’ 관련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을 내걸 것이란 일부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문구 선거 현수막 사용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 “후보를 특정하지 않는 선에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현수막·피켓에 ‘내로남불’ ‘위선’ ‘무능’이라는 단어를 써도 되느냐는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질의에 “가능하다”고 답변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가 지난해 4·7 보궐선거 때는 이런 단어가 특정 정당(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금지했던 것과는 정반대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단어만으로는 일반 선거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정당⋅후보자의 명칭이 특정되는 것으로 쉽게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선관위의 이런 유권해석을 두고 국민의힘에선 “여당의 야당 후보 공격을 허용하려고 작년 재보선 때 불허했던 야당 요구를 수용한 것 아니냐”고 했다. 선관위가 선거법을 여당 측에는 ‘융통성’ 있게 적용한다는 주장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선관위가 표현의 자유를 내걸어 신천지⋅무속 단어 사용을 허용한 것처럼, 이재명 후보가 형수에게 욕설 등 폭언을 한 것도 현수막 문구에 포함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선관위 유권해석을 둘러싼 정치 편향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관위가 ‘보궐선거 왜 하죠?’라는 시민단체 캠페인을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제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선관위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시설물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선거법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시 선관위는 ‘권력형 성추행 범죄로 실시하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비용 국민 혈세 824억원 누가 보상하나’라며 1인 시위에 나설 경우 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민주당을 떠오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반면 선관위는 친여(親與) 성향 교통방송(TBS)의 ‘일(1)합시다’ 캠페인에 대해선, 민주당의 선거 기호 1번을 떠올리게 한다는 야당 반박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구호를 연상하게 하는 ‘합시다 사전선거’ 현수막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봤다.

선관위는 “이번 대선에선 후보자가 특정되는 표현만 제한되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폭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갑질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대장동 게이트 주범! ‘그분을 특검 수사하라”라는 문안을 쓰는 것도 허용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다만 선관위는 “이재명 경기지사 대장동 게이트 진상조사 촉구 ‘화천대유’는 누구 껍니까?”라는 현수막은 이 후보 이름을 거론했기 때문에 불허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이날 “선관위가 우리 후보를 음해하기 위한 ‘주술, 신천지’ 등 용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여당을 편들고 있다”고 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명에서 “공직선거법 유권해석은 편향된 중앙선거관리위원 몇 명이 그때그때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