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선후보가 14일 서울 동작동 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서 분향· 헌화한 뒤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이 후보가 이날 박 전 대통령 묘소에 분향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14일 “정치 교체와 국민 통합에 동의하는 모든 정치 세력과 연대해 국민 통합 정부를 구성하겠다”며 “필요하다면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도 참배했다. ‘국민 통합’을 띄우면서 야권의 후보 단일화 이슈에 대응하고, 중도·보수 성향의 부동층 유권자 공략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 서울 명동극장 앞 사거리에서 ‘위기 극복, 국민 통합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위기 극복과 도약의 상징인 명동 거리에서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며 “이재명은 국민을 통합하고 화해하고 연대하는 통합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차기 정부의 성격을 ‘민주당 4기 이재명 정부’로 규정했던 이 후보는 “국민 내각과 책임 총리로 꾸려지는 통합 정부의 완성을 위해 ‘이재명 정부’라는 이름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치 세력의 실질적 권한을 보장할 방안으로 ▲국민 통합 정부를 위한 ‘국민 통합 추진위원회’(가칭) 구성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총리의 각료 추천권 보장 등을 언급했다. 이 후보가 국무총리 국회 추천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당에도 내각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현충원 간 李, 이승만·박정희 묘역도 참배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를 참배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이승만 전 대통령 묘도 참배했다. 이 후보 뒷줄 왼쪽부터 정세균·이낙연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김두관 의원. /이덕훈 기자

이 후보는 그러면서 개헌을 언급했다. 그는 “모든 정치 세력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헌안을 마련해 최대한 임기 초반에 합의·처리하겠다”며 “5·18 민주화 운동과 환경 위기 대응 책임을 명시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며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언급한 4년 중임제 개헌 필요성도 거듭 거론했다. 이 후보는 또 “0선 이재명이 거대 양당 중심의 여의도 정치를 혁파하고 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 개혁으로 제3의 선택을 통한 선의의 정책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며 “적대적 공생이라 불러 마땅한 거대 양당 체제 속에서 우리 민주당이 누려온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이를 왜곡하는 위성 정당 창당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이는 정의당 등 군소 정당 지지자를 겨냥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이 후보는 이에 앞서 현충원을 찾아서는 현충탑과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 후보 신분이었던 2017년 1월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親日)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라며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지 않았다. 이 후보는 태도를 바꿔 참배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5년의 세월이 지나며 많은 생각을 했고 제 사회적 역할과 책임감도 커졌다”며 “공(功)은 기리고 과(過)는 질책하되,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개인의 선호보다 국민 입장에서 어떤 게 더 바람직한지를 생각해야 된다”고 했다.

이 후보가 이날 ‘국민 통합’ 메시지를 잇달아 발신한 것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적폐 수사’ 발언 등으로 친문(親文)을 포함한 민주당 전통 지지층은 어느 정도 결집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중도·보수 부동층에 지지를 호소하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오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민간 기업 임원의 보수를 법정 최고임금의 30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에 대해 “결국 ‘삼성전자 몰락법’ 아니냐”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또 페이스북에서는 “진보의 금기를 깨겠다”며 “토목 건설로 건물·다리·도로를 놓아 출퇴근 지옥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행보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제안으로 야권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단일화 논의에 견제구를 던지는 효과도 있다. 그는 윤 후보를 겨냥해 “이번 대선에서 유능한 민주 국가가 될지, 복수 혈전과 정쟁으로 지새우는 무능한 검찰 국가가 될지가 결정된다” “나쁜 변화가 아닌 좋은 변화여야 한다”고 했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앞으로는 새로운 것을 꺼내기보다 이 후보가 강점으로 내세우는 정책 역량, 경제 지도자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각오에 대해 “제 영혼의 밑바닥까지 다 동원해, 죽을 힘을 다해서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