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국제 정세가 심상찮은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관련 SNS 발언이 심각한 외교적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외무부가 적대 국가에 사용해 온 ‘규탄(condemnation)’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정면 대응에 나서면서 양국은 1962년 수교 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이는 한국과 이스라엘 관계를 넘어서 한미 관계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위태로워 보입니다.
‘홀로코스트’ 언급이 논란의 핵심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이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에 등장한 홀로코스트 관련 표현입니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아이를 고문한 뒤 건물에서 떨어뜨렸다’는 취지의 영상을 공유하며 “사실이라면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 사건이 최근에 일어난 것처럼 썼는데, 이는 2024년 9월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이 대통령은 3시간 뒤 다시 글을 올려 사실관계를 분명히 한 후, 이스라엘이 인권과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대통령이 홀로코스트를 군사 행동과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unacceptable·condemnation 동원한 초강경 성명
이스라엘 외무부는 11일 X 공식 계정을 통해 “이 대통령의 발언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unacceptable), 강력한 규탄(condemnation)을 받아 마땅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통상 우호국 정상의 발언에 대해 사용하는 외교적 표현을 훌쩍 넘어서는 수위입니다. 외교가에서는 “대한민국과 수교 관계에 있는 국가가 한국 대통령을 향해 ‘unacceptable’과 ‘condemnation’이라는 표현을 동시에 사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특히 ‘condemnation’은 통상 적대국의 도발이나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를 규탄할 때 사용되는 최고 수위의 외교 용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사건에 대해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한 작전 중 발생한 것이며, 당시 이스라엘 군인들은 생명에 대한 직접적이고 긴박한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이 사건은 이미 2년 전에 철저한 조사와 조치를 거쳤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대통령으로부터 최근 이란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시민을 상대로 감행한 공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글을 게시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상 조롱에 가까운 메시지를 덧붙였습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예외 없는 이스라엘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사회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극도로 민감한 사안입니다.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집단 정체성과 기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외교적으로는 사실상 ‘금기’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은 이 대통령이 홀로코스트를 전시 상황에서의 비인권적 행위와 비교한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문제로 받아들였고, 초강경 대응에 나섰습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홀로코스트는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삼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이번 발언은 건드려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직 이스라엘 대사 역시 “유대인 사회는 이러한 발언을 장기간 기억하고 반복적으로 인용하는 특성이 있다”며 “이번 발언이 향후에도 유태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물밑 조율 대신 공개 충돌 선택
이스라엘은 2023년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해 대규모 보복 작전을 전개하고 최근 이란을 공격, 국제사회에서 반(反)이스라엘 여론이 확산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을 향해서도 공개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서며 우호국 정상에 대해 적대적 표현을 사용,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이스라엘 외무부 성명에 대해 다시 글을 올려 반박한 것은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 측 반발에 대해 X에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외무부 성명에 대해 반박하려면 외교부 대변인을 내세웠으면 될 텐데, 굳이 이 대통령이 다시 나서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외교부 “홀로코스트 고통 공감”… 사태 진화 시도
논란이 다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형국이 되자 한국 외교부가 나섰습니다. 외교부는 X에 “이스라엘 외교부가 이 대통령 발언의 취지를 잘못 이해했다”며 이스라엘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이어서 “홀로코스트로 인해 이스라엘이 겪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해 늘 마음을 함께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이 대통령이 홀로코스트를 경시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외교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에 대한 애도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습니다.
전쟁 국면 속 ‘타이밍 리스크’… 대미 관계까지 변수
이번 논란은 이 대통령 발언의 내용뿐 아니라 시점 측면에서도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 군사 행동을 펼치는 전시 상황입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민감한 시점에서 나온 발언은 단순한 인권 문제 제기를 넘어 전쟁 당사국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미국의 대외 정책과 긴밀히 연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번 논란이 한미 관계로까지 파급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외교부의 한 전직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비롯해 미국 정계, 언론계에는 유태인들이 적지 않다”며 “한미 관계가 중요한 시점에서 이들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월가 유태인 네트워크의 역할이 컸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안이 반대로 작용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권·진보 진영 “정당한 인권 문제 제기”…정치 쟁점화 조짐
그런데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싸고 여권과 진보 진영에서는 이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안을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키려는 움직임도 감지됩니다.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된 추미애 전 의원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무차별 살상에 대해 인권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추 후보는 그러면서 일본을 걸고 들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은) 일제의 전시 체제에서 위안부와 같은 반인륜적 학대와 만행, 강제 징용공 같은 노예 노동 강요, 탄광 또는 군수 기지에서 감금·학살·생매장뿐만 아니라 화학 생체 실험, 관동 대지진 학살을 겪은 민족이다. 과거 만행을 부정하는 일본을 상대로 우리의 인권 회복 노력에 국제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라도 제네바 협정 위반 행위 같은 국제 인도법적 주장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6·3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 재입성을 노리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대통령의 반박 기사를 공유하며 “이재명 대통령을 존경하고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준 기사다. 대통령님이 X에 올리신 글을 리트윗하며 그 메시지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보편적 인권을 강조한 발언에 대해 이스라엘이 ‘용납할 수 없다’고 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SNS 외교의 한계… 검증 없는 발신이 리스크 키워
이번 사태는 대통령의 SNS 활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던지고 있습니다. 국가 정상의 발언은 형식과 무관하게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기에 현안에 대한 사전 검증과 정책 조율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외교·안보 라인의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외교적 파장이 큰 사안을 개인 메시지처럼 처리할 경우 의도와 다른 해석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놓고 “이 대통령이 실용 외교를 한다더니 왜 갑자기 가치 외교를 하느냐”고도 묻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에는 완전히 입을 닫으면서 왜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지적과 관련, 페이스북에서 게시된 두 전문가의 글을 인용해 전달합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 대통령이) 이제 조금 더 자신감 있게 국제적 의제에 대해 우리 의견을 표명하는 자세로 나섰다면, (1) 일관성, (2) 보편성, (3) 그리고 형평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보편적 인권의 개념에서라면 북한의 인권 감수성 부족과 금수와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따끔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을 비난한 서방 국가의 정상들도 북한 인권 결의안에는 찬성표를 던졌다. 마찬가지로 그 기준이 위구르-신장, 티베트, 홍콩, 미얀마,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제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하고, 앞으로 그러실 것으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한신대 윤평중 명예교수도 이 대통령을 향해 제언했습니다. “나는 이 대통령 게시글 내용 자체엔 ‘거의’ 공감한다. 하마스의 잔악한 테러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국가 테러리즘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중동 전쟁 같은 최고 난도 사태에 자연인이나 평론가가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 시점에 직접 ‘개입’하는 듯 비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일국의 최고 통치자는 평지풍파로 문제를 키우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민생과 나라의 중대 과제들을 실용적으로 풀어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