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의 폭탄 속에 또다른 폭탄이 들어가 있는 폭탄인 집속탄/위키피디아

북한이 지난 8일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며 하나의 탄두에 수십~수백 개의 자탄(子彈)이 들어 있는 ‘집속탄’을 시험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이란이 이스라엘의 방공망 ‘아이언 돔’을 무력화하는 데 사용한 집속탄은 공중에서 폭발하며 자탄이 사방으로 확산해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기 때문에 ‘악마의 무기’로 불린다.

9일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KN-23 계열의 ‘화성포-11가’형 미사일에 집속탄을 탑재해 자탄의 위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진행했다며 “약 6.5∼7㏊(약 2만 평) 면적을 초토화할 수 있음을 확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축구장 10개 규모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우리 군은 전날 오전 8시 50분쯤 북한이 원산 일대에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240㎞를 비행해 동해의 한 무인도 인근에 떨어졌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집속탄 시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집속탄 탑재 가능성을 시험한 KN-23 계열은 사거리가 700㎞에 달해 부산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공중에서 자탄을 흩뿌리면 현재 한·미 방공망으로 요격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국방과학원과 미사일총국이 지난 6∼8일 ‘중요 무기 체계들에 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며, 전자기 무기 체계(EMP)와 탄소섬유탄 등도 함께 시험했다고 밝혔다. EMP는 강력한 전자기파로 전자 장비를 마비시키는 무기다. 탄소섬유탄은 전력망을 무력화해 ‘정전 폭탄’으로 불린다. 북한이 민간인까지 무차별 살상하는 집속탄과 민간의 전력 인프라를 파괴하는 EMP, 탄소섬유탄 등을 부각시킨 것은 유사시 대남 타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도 못 막는 ‘강철비’… 北이 수도권에 퍼부으면 방어 어렵다

북한은 9일 집속탄 시험 사실을 공개하며 “표적 지역을 초강력 밀도로 초토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앞서 2022년 11월에도 한미 연합 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응해 집속탄을 탑재한 전술 탄도미사일 2발을 서해 무인도에 발사했지만, 당시에는 발사 사실만 간략하게 발표했다. 이번 시험 후 “초토화” 등의 표현을 쓰며 위력을 강조한 데는 집속탄으로 이스라엘 방공망을 돌파한 이란과 비슷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리는 ‘과시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집속탄 등의 시험 사실을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만 알렸고,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 등 대내 매체에는 싣지 않았다.

연초부터 미국이 베네수엘라·이란을 잇따라 공격하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 나라들과 달리 북한은 핵무기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더 이상 우리 국가는 위협을 당하는 나라가 아니며 필요하다면 위협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7일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편하게 살려면 우리에게 집적거리지 말라”고 했다. 북한이 집속탄, EMP탄, 탄소섬유탄 등을 대남 타격용으로 볼 수 있는 무기들을 시험했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픽=백형선·Gemini

이스라엘방위군(IDF)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 이후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의 절반가량이 집속탄을 장착하고 있었다. 집속탄은 목표 지점 상공에서 탄체가 분해되며 내부에 탑재된 수십에서 수백 개의 자탄이 흩뿌려지게 설계돼 있다. 자탄 하나하나의 살상력도 크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 무차별적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란의 집속탄은 이스라엘의 콘크리트 건물까지 파괴하며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전쟁 초기부터 서로 집속탄을 사용했다.

우리 군 관계자는 “집속탄을 장착한 탄도미사일도 현행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로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고 했다. 집속탄이 목표 지점에 도달해 자탄이 살포되기 전에 모탄(母彈)을 요격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군사 전문가는 “이스라엘 다층 방공망은 한국보다 최소 1겹이 더 있는데 그 이스라엘조차 못 막아내는 것을 우리 군은 막아낼 수 있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방공망은 요격 고도에 따라 하층부의 ‘아이언 돔’, 중층부의 ‘다윗의 돌팔매’, 상층부의 ‘애로2′와 최상층부의 ‘애로3′ 등으로 구성돼 있다. 패트리엇, 천궁-2, 사드로 구성된 우리 방공망보다 더 다층적이지만, 이란의 집속탄을 모두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요격을 피하기 위해 모탄에서 자탄이 살포되는 고도도 미사일마다 제각기 다르게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공중에서 집속탄이 분해돼 자탄이 흩뿌려진 후에는 요격이 불가능하고, 사실상 대응할 방법이 없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평균 1500㎞ 정도 떨어져 있지만, 남북은 인접해 있어 더욱 문제다. 이일우 자주국방연구포럼 사무국장은 “이스라엘은 이란 집속탄이 날아와도 탐지·경보를 통해 대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우리 수도권은 북한에서 5분 이내에 타격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집속탄과 함께 ‘정전 폭탄’, ‘정전탄’으로 불리는 탄소섬유탄도 시험했다고 밝혔다. 정전 폭탄에는 전도가 높은 니켈과 탄소섬유를 결합해 만든 자탄이 탑재돼 있으며, 목표 지점에서 살포된 가느다란 탄소섬유가 발전소나 송전선에 합선을 일으키며 전력망을 파괴한다. 우리 군도 집속탄을 가지고 있고 2025년 첫 실사격 훈련도 했지만, 탄소섬유탄은 아직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은 전자기 무기체계도 시험했다고 했지만, 무기 관련 사진은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방출해 일대의 전자 기기나 통신망·레이더 등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적 지휘 체계를 무너뜨리는 EMP탄의 일종을 시험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자기 무기와 탄소섬유탄 시험은 현대전의 핵심인 전력과 통신망을 마비시키는 ‘소프트 킬(soft kill)’ 능력을 실전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저원가 재료를 도입한 발동기(엔진) 최대 작업 부하 시험을 위한 사격도 진행했다”고 했다. 8일 오후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은 동북 방향으로 700㎞ 이상을 비행했는데, 저원가 엔진 최대 사거리 시험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사무총장은 “SRBM도 ‘가성비’에 초점을 맞춰 대량으로 보유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